트럼프 관세 위협에…과테말라, 美와 '안전한 제3국' 협정(종합)
온두라스·엘살바도르 이민자들, 미국 대신 과테말라에 망명신청해야
인권단체 등 "과테말라, 이민자들에게 절대 안전한 나라 아냐" 비판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을 이기지 못한 과테말라가 중미 이민자들을 자국에 더 많이 수용하기로 하는 협정을 미국과 체결했다.
26일(현지시간) 케빈 매컬리넌 미 국토안보부 장관대행과 엔리케 데겐하르트 과테말라 내무장관은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민자 망명 관련 협정문에 서명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서명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양국간에 역사적인 '안전한 제3국' 협정을 체결한다"고 예고하며 "굉장한 날이다. 획기적인 협정 덕에 코요테(불법이민 알선 브로커)와 인신매매범들은 일을 못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한 제3국' 협정이 발효되면 미국행을 희망하는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은 미국 대신 첫 경유지인 과테말라에 망명 신청을 하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중미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 건수를 상당히 줄일 수 있는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지미 모랄레스 과테말라 대통령과 안전한 제3국 협정에 거의 합의했다고 말했으나, 지난달 15일 과테말라 헌법재판소는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며 협정 체결에 제동을 걸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과테말라가 협정을 파기했다고 맹비난하며 관세 등 다른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협정 체결 후 트럼프 대통령은 과테말라 정부를 치켜세우며 이제 과테말라가 "미국의 적이 아니라 친구"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아울러 이번 협정에는 미국이 과테말라 농부에 대한 임시 노동비자 발급을 늘리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고 트럼프 대통령은 말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이날 대국민 성명에서 '안전한 제3국' 협정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은 채 미국과의 합의 소식을 전하며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인들에게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테말라는 또 이번 협정이 2년간 유효하다며 협정 체결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중대한 파급효과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도 설명했다.
다만 과테말라 헌법재판소가 협정 체결을 가로막은 상황에서 협정이 어떤 식으로 발효될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덧붙였다.
인구 1천700만 명의 과테말라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못지않게 빈곤과 폭력이 심각한 국가로, 중미 이민자들의 경유지이기도 하지만 주요 출발지이기도 하다.
올해 미국 남부 국경에서 적발된 불법 이민자 중 과테말라 국적자가 가장 많았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미 국무부도 과테말라의 치안 상황에 대해 "살인사건이 흔히 발생하고 폭력조직이 광범위하게 활동하며 경찰이 무능력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망명 시스템도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아서 지난해 망명 신청자는 259명에 그쳤고, 이 중 한 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WP는 설명했다.
이번 협정에 대해 인권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비영리기구 레퓨지 인터내셔널은 성명에서 "과테말라는 망명 신청자들에게 있어 절대 안전한 곳이 아니다"라며 "중미의 가장 취약한 이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앰네스티도 "트럼프 정부는 안전한 곳에서 삶을 재건하려는 이들에게 문을 닫아거는 잔인하고 불법적인 계획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