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테러' 지지 발언한 홍콩 친중파 의원 부모 묘소 훼손돼
27일 백색테러 규탄 집회 개최에 충돌 우려 고조
지하철 운행 방해 등 백색테러 사건 여파 이어져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대와 시민들을 정체불명의 남성들이 무차별 구타한 '백색테러' 사건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던 홍콩 의원의 부친 묘소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1일 밤 홍콩 위안랑(元朗) 전철역에는 100여 명의 흰옷을 입은 남성들이 들이닥쳐 쇠몽둥이와 각목 등으로 송환법 반대 시위 참여자들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고, 이로 인해 최소 45명이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친중파 입법회 의원 허쥔야오(何君堯)는 이 남성들을 '영웅'으로 지칭하면서 "자신의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 한 행동이다"라는 발언을 했다가 공분을 샀다.
24일 홍콩 명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전날 홍콩 튄문 지역에 있는 허 의원 부모의 묘소가 그의 발언에 분노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 의해 심하게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허 의원 부모의 묘비가 부서진 것과 더불어 납골단지에 있던 유골마저 주변에 뿌려졌다. 묘비와 그 주변에는 페인트가 칠해졌으며, '관료와 폭력배의 결탁', '워싱워 패거리' 등의 글자도 쓰여 있었다.
홍콩 경찰은 지금껏 백색테러 용의자 11명을 체포했는데, 여기에는 홍콩 폭력조직 삼합회(三合會)의 일파인 '워싱워(和勝和)', '14K' 등의 조직원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허 의원은 이에 "어떻게 부모의 묘소를 훼손할 수 있느냐"며 "홍콩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색테러 사건의 여파가 이어지면서 이날 오전 9시 무렵 홍콩 도심의 센트럴 역에서는 시위대가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들은 백색테러 사건 발생 당시 지하철 당국이 시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면서 항의했다. 지하철 차량 문을 못 닫게 한 이들의 운행 방해로 지하철 운행이 30분 가까이 차질을 빚었다.
오는 27일에는 백색테러 사건이 발생한 위안랑 지역에서 대규모 규탄 집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27일과 28일 홍함, 토카완, 정관오 등에서 송환법 반대 집회를 열기로 했던 재야단체 등은 이를 모두 취소하고 27일 오후 4시 위안랑 지역에서 위안랑 역 백색테러 사건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특히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활발하게 참여하는 소셜미디어에서는 백색테러 사건에 대한 '복수'의 의미로 백색테러 배후 인물의 부모 묘소와 사당 등을 파괴하자는 주장이 올라와 논란을 빚고 있다.
전날 오후에는 주말 집회로 인한 충돌을 우려하는 수십 명의 위안랑 지역 주민들이 위안랑 경찰서로 몰려와 경찰이 집회 허가서를 발부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홍콩에서는 50인 이상의 시민이 참여하는 공공 집회를 개최할 때는 집회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위안랑 지역에 기반을 둔 친중파 의원 렁처청은 "주말 집회에서 시위대가 마을에 들어와 기물을 파손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수천 명의 지역 주민들이 그들을 쫓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홍콩 항공노조는 26일 오후 1시 홍콩국제국항에서 여행객들과 공항 종사자, 항공사 직원 등을 대상으로 최근 송환법 반대 시위의 경과와 의의 등을 알리는 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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