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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경제보복 보름] ①日 일방조치로 얼룩진 한일관계…파국 치닫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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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경제보복 보름] ①日 일방조치로 얼룩진 한일관계…파국 치닫나
징용배상 韓대법판결 이후 공방 과정서 日 일방적 조치
식민지배 불법성 미봉한 '65년 체제 종말' 해석도
미국의 관여 가능성 속 양국 직접대화 통한 해법 모색 가능성 주목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 한일관계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부터 2015년 12월 한일위안부 합의 이전까지 한일관계가 수교 이후 가장 심각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때가 '바닥'이었다면 노골적인 일본 정부 차원의 경제 보복까지 나온 지금은 '지하'로 내려갔다는 진단도 나온다.

일본은 지난 4일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기판 제작 때 쓰는 감광제인 리지스트, 반도체 세정에 사용하는 에칭가스(고순도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의 대 한국 수출시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한국에 수출할 때 한번 포괄적인 허가를 받으면 3년간 개별 품목에 대해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포괄허가'를 부여했는데 그것을 폐지함으로써 개별 제품을 수출할 때마다 경제산업성에 수출허가를 신청해 심사를 거쳐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어 일본은 2차 보복조치도 대기시켜 놓고 있다. 안전보장상 우호국에게 수출관리 우대조치를 하는 '화이트(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한국 산업을 견제할 뿐 아니라 한국 산업의 생태계를 흔들 수 있는 상시적 '통상무기'를 이번 기회에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일본의 의도를 진단했다.


처음엔 로우키(low key·저강도 대응)로 대응했던 한국 정부의 목소리도 점점 강경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1차 경고한데 이어 15일에는 "일본 경제에 더 큰 피해가 갈 것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양국 정부간 갈등을 넘어 상대국에 대한 양국 국민의 감정도 심각하게 악화하는 양상이다.
자유무역 질서와 국제분업의 룰에 역행하는 일본의 기습적인 보복조치에 대해 일본 국민 과반이 지지한다는 일본 언론사의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나, 한국갤럽이 지난 9∼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에 호감이 간다'는 응답이 12%로 1991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한 것은 그 방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갈등의 뿌리에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 그에 대한 제대로 된 사죄 및 배상의 결여가 자리해 있지만 일본발 여론조사 결과는 일본인의 인식 속에 과거 잘못에 대한 부채감이 사라졌음을 짐작케 한다.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에 타격이 우려되는 가운데, 한국내 일본 제품 불매운동 흐름과 일본 여행 취소 러시가 감지되는 등 양국간 갈등은 이미 인적교류와 경제교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소 냉전의 한복판에 이뤄진 1965년 수교이후 과거사 갈등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도 경제와 안보 관련 공유된 이해관계에 입각해 최소한 명목상으로는 우방 관계를 유지해온 한일관계가 최악의 위기에 빠진 형국이다.
일본은 부당한 대 한국 경제보복 조치들에 대해 '신뢰 관계 손상', '수출관리를 둘러싼 부적절한 사안 발생' 등을 이유로 거론했다.
그러나 작년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들의 한국내 자산에 대한 압류 및 매각 조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과 자신들의 중재위 설치 요구 등에 대한 한국 정부의 무반응에 대한 보복성 조치를 선거(21일 참의원 선거)라는 정치이벤트를 앞둔 타이밍에 꺼내 들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징용배상 뿐 아니라 그 이전 위안부 합의 검증 및 피해자 지원 재단 해산까지 포함한 한국 정부와 법원의 '역사 바로 세우기'를 일본은 '합의 위반', '골포스트 옮기기'의 프레임으로 보면서 보복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의 일방적인 조치로 격화한 한일 갈등에 대해 좀 더 구조적인 분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좁게는 '친일 청산'을 강조하는 문재인 정부와 역사 수정주의적 성향이 강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의 필연적 충돌로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패전국의 멍에'를 벗으려 하는 아베 정권은 가장 지우고 싶은 얼룩인 위안부와 강제 징용 문제에서 '타협'보다는 '원칙'을 내세우는 문재인 정부를 '걸림돌'로 간주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 터에 자국 기업의 재산상 이해가 걸린 문제가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을 통해 새로 생겨나자 결국 보복 조치까지 꺼냈다는 분석이다.
그보다 넓은 관점에서 1965년 한일 기본조약에 입각한 '한일관계 1.0' 또는 '65년 체제'의 종언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54년 전 경제건설 자금이 절실했던 개도국과 세계 2위의 아시아 최강 경제 대국 사이에 맺어진 조약이 현재의 한일관계와 달라진 한국 내 인권 의식을 반영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불법이냐 합법이냐에 대해 1965년 양국 정부는 각자 자기 입장대로 해석하는 '모호성'의 영역으로 남겨뒀지만, 작년 그것을 명확히 불법으로 판단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이상 더이상 모호성의 영역에서 서로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세계 12위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한국을 견제하는 일본의 심리, 작년 이후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이해관계의 차이, 중국과 북한을 보는 인식 차이가 작용하면서 갈등의 전선은 생각보다 더 복잡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번 갈등을 단순히 강제 징용 문제를 둘러싼 '역사전쟁'으로만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양국은 국가의 위신과 국민감정이 걸린 '치킨게임'을 하는 형국이어서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일본의 보복 조치가 선거를 앞두고 보수 지지층 결속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분석 하에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한때 나왔지만, 점점 힘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일본이 계획한 대로 한국을 '화이트 국가'에서 제외하면 양국 간 갈등은 민관에 두루 걸친 전면전이자 장기전 국면으로 흐를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그러나 양국 관계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우려는 한일 양국은 물론 미국 조야에서도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프로세스에서 일본이 '방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일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으며, 양국관계 악화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될 수 있으면 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앞으로 당면 변수로는 한국, 일본과 각각 군사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의 관여(개입)가 거론된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7일 서울에서 한일갈등 상황과 관련 "미국은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으로서 이들의 해결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한미일 대북 공조에 중요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연장 문제가 걸려 있는 만큼 GSOMIA 연장 문제를 계기로 미국이 한일갈등에 본격적인 관여를 하게 될지 주목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8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청와대 회동에서 GSOMIA와 관련, "지금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상황에서 미국이 대북 공조망 유지 차원에서라도 막후에서 한일 간 파국을 막는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도 없지 않다.
반면, 미일 정상이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과거사에 대해 얼마나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미국이 보편적 가치관에 입각해 공정한 '중재'를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한일간에 최소한의 대화 채널 복원부터 시작해서 문제의 해결을 놓고 양자 간에 허심탄회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정부는 일본에 부당한 보복 조치 철회를 강하게 요구하되, 전략적 고려에 입각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가 18일 회동을 통해 '범국가적 비상협력기구' 구성에 합의하고 국제분업의 룰을 깬 일본에 대해 보복 조치를 철회하고 외교적 노력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런 흐름 속에 아베 정권이 참의원 선거 이후, 이미 예고한 '화이트 국가 배제' 카드를 유보하고, 대화로 해결 방안을 찾는 쪽으로 방향을 틀지 여부가 이번 사태 전개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jhc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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