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세계수영] 수영대회 성공 견인 '노익장' 봉사자들
최고령 김종식 자원봉사자 "나라를 잃은 어린 시절 기억에 국가적 행사 참여"
광주개최 2개 국제대회 자원봉사 참여 고제원 씨 "열정적으로 봉사하면 젊어지는 기분"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천정인 기자 = "어린 시절,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나라를 잃어버린 기억에 국가적 행사에 참여해 꼭 일조하고 싶었어요."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실핏줄 역할을 하는 자원봉사자, 그중 노익장을 과시하는 봉사자들이 대회성공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종식 씨는 이번 수영대회 자원봉사자 중 만 90세로 최고령자다.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수영대회 관계자들이 묵고 있는 광주 라마다호텔 로비에서 오후 5시까지 대기하며 일본어 통역 업무를 지원하고 있다.
로비에서 온종일 대기하면 간간이 눈에 띄는 일본인들이 도움이 필요할 눈치를 보이면 어느덧 앞에 서서 유창한 일본어로 안내한다.
김씨가 일본어를 배운 배경에는 아픈 역사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태어난 김씨는 초등교육을 받으며 학교에서는 물론 밖에서는 일본어로 의사소통을 했다.
17살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써온 일본어는 나라를 잃은 상처와 함께 몸에 그대로 배었다.
장성해서는 토건 회사에서 일한 김씨는 일본 건축 서적 등을 보며 일본어 실력을 유지하고, 은퇴 뒤에는 일본에 사는 조카가 보내주는 일본 서적을 취미 삼아 읽으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지난 2015년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와 올해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오랜만에 사회로 외출하는 기회였다.
김씨는 "식민지시설 국권을 잃어본 기억에 국가적 행사에 참여하며 '나라를 가졌다는 것이 이렇게 소중하구나'를 절감하고 있다"며 "고령이라 자녀들은 걱정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원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티스틱 수영대회가 펼쳐지는 광주 서구 염주체육관에는 80대의 연세에 20대 젊은이보다 열정적으로 경기장을 누비는 자원봉사자가 있다.
영어 통역 자원봉사를 하는 고제원(85) 씨다.
고씨는 아티스틱 수영 경기장을 찾는 내외신 사진기자들의 취재를 옆에서 돕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낯선 경기장 환경에 헤매는 외신 기자들을 이끌고, 기자 전용 좌석에 잘못 앉은 관람객을 안내하는 등 종일 경기장을 누비는 김씨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가 80대 노인이라는 것을 믿지 못한다.
그는 은퇴 이전에는 조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였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학교의 대외교류업무를 다수 진행하며 영어를 익힌 그는 은퇴 뒤에는 도심 속 경로당과 자원봉사단 활동을 하며 살고 있었다.
자원봉사가 몸에 배 있어서, 국제대회 자원봉사도 자연스럽게 동참하게 됐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선 그를 보고 아내는 자녀에게 "너희 아버지가 신나게 집을 나간다"고 말할 정도로 그에게는 수영대회 자원봉사 참여가 삶의 활력이 되고 있다.
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에 이어 수영선수권대회까지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고씨는 선수권대회가 끝나면 곧바로 열리는 마스터즈대회 자원봉사자 명단에도 미리 이름을 올려뒀다.
'젊어 보인다'는 주변 반응에 김씨는 "내 뒷짐 지고 있지 않고, 나서서 열정적으로 일하니 나이보다 젊게 보는 것 같다"며 "나의 친절이 우리나라와 광주의 얼굴이 된다고 생각하고, 대회성공 개최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pch80@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