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세계수영] '수구 수문장' 오희지 "0-30 되지 않게…한 골 더 막아야죠"
한국 여자 수구대표팀의 대회 목표는 1득점
"0-20, 0-30 되면 후배들 힘 떨어질 수 있으니까…희망 보여드리고 싶다"
(광주=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오희지(22·전남수영연맹)는 잠들기 전 "어떻게 하면 한 골을 덜 허용할까"를 고민한다.
오전에 눈을 뜨고 처음 하는 생각도 "한 골 더 막을 방법을 찾자"이다.
한국 여자 수구대표팀은 10일 '결전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부대에서 전남체고 남자 수구팀과 평가전을 했다. 공식 경기장 바로 옆에 있는 보조 구장에서 치른 '연습 경기'였지만, "한 골이라도 더 막아야 한다"는 오희지의 각오는 더 강해졌다.
사상 처음으로 결성한 한국 여자 수구대표팀의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목표는 '1득점'이다. 수영 경영을 하다 모인 선수들로 '전문 선수'로 팀을 구성한 다른 팀을 이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실 1득점도 매우 어려운 목표다.
'1득점'이란 목표에 가려진 포지션도 있다. '대량 실점'을 각오해야 하는 수구 불모지의 골키퍼다.
한국 대표팀의 주장이자 골키퍼 오희지는 압도적인 신체조건과 기량을 갖춘 수구 전문 선수들이 던지는 수십 번의 슛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한다.
오희지는 "헝가리, 캐나다, 러시아 등 예선을 치르는 국가와 우리 대표팀 사이에, 실력 차가 큰 건 사실이다. 하지만 0-30, 이렇게 패하고 싶지는 않다"며 "우리 대표팀의 목표가 1득점이다. 0-20, 0-30이 되면 공격을 해야 하는 우리 후배들의 힘이 빠지지 않겠나. 그렇게 나도 뒤에서 최선을 다하고, 우리 팀 후배들이 힘을 내서 한국 여자 수구 대표팀이 득점하는 장면을 꼭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오희지는 수영 경영 선수였다. 최근까지는 체육 교사가 되고자 시험을 준비했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 최초의 여자 수구대표팀 주장이다.
오희지는 "2017년 평영 50m 한국 랭킹 5위까지 했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체육 교사 임용 시험을 준비했다"며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공부를 마친 뒤에 전남체고 수영장에서 수영하고, 공도 던져봤다. 그런데 이렇게 수구 대표팀에 뽑혀 세계선수권을 준비하고 있다.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실제 일어났다"고 웃었다.
수중 공식 훈련만 5∼6시간, 그 외에 개인 훈련도 2∼3시간씩 하는 고된 일정 속에서도 오희지는 자꾸 웃는다.
그는 "내가 뛸 수 있는 시점에, 한국 광주에서, 세계수영선수권이 열릴 확률이 얼마나 됐겠나. 이렇게 도전할 기회를 얻은 것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다"라며 '웃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신체적으로 괴로운 일은 많다.
오희지는 훈련 중에 공을 얼굴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처음 부상은 완쾌했지만, 이후 남자 고교생들과 평가전을 치르는 동안 또 코뼈를 다쳤다.
대회 개막(7월 12일)이 다가온 터라, 오희지는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콧등에 시퍼런 멍이 들었지만, 오희지는 "코뼈가 다시 부러진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통증은 있다"라고 말하면서도 "지금은 마음 놓고 아플 때가 아니다. 나 때문에 후배들이 걱정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
여자 수구 대표팀 13명 중에서 11명이 중, 고교생이다. 오희지는 "대표팀 막내와 나의 나이 차가 9살이다. 그런데도 전혀 세대 차를 느끼지 못한다. 후배들이 정말 잘해준다"고 동생들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후배 송예서(서울체고)는 "희지 언니가 혼자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다. 우리들은 언니에게 의지하지만, 언니는 혼자 견딘다"며 "언니 덕에 몸은 힘들어도, 즐겁게 훈련한다"고 했다.
골키퍼란 포지션도 리더십 있는 맏언니 오희지에게 잘 어울린다. 오희지는 "수구에서 골키퍼는 야전 사령관 역할을 한다. 경기 중에 다른 선수들에게 움직임 등을 지시한다"고 했다.
하지만 맏언니도 후배들에게 '미래'를 보장할 수는 없다. 한국에는 여자 수구팀이 없다. 이번 대표팀도 세계선수권이 끝나면 해산한다.
오희지는 "우리 모두 수구 대표팀에 지원했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책임감을 갖고 훈련하겠다.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팬들께도 보여드리고 싶다"며 "여자 수구에도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드렸으면 좋겠다. 대회가 끝나고도 나와 후배들이 수구를 계속할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jiks7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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