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서 농사에 양봉까지…"행촌권 성곽마을을 아시나요"
한양도성 끼고 있는 종로구 행촌권 도시농업마을공동체
주거재생에 도시농업 접목…"사회적기업 육성해 수익·일자리 창출 목표"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처음에는 좀 힘들었는데 지금은 너무 즐거워요. 궁금해서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와보고 싶고 어떻게 하면 좀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행촌권 도시농업마을공동체 박명화 공동대표는 이렇게 말하면서 텃밭에서 연신 상추를 땄다.
박 대표는 "노지에서 햇빛을 보고 자란 무농약 상추라 하얀 진액이 나온다. 다들 한번 먹으면 너무너무 맛있다며 다시 찾는다"며 "지금도 음식점에 조금씩 팔고 있는데 더 키워서 올 여름 상추로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울 한복판에 도시농업마을공동체가 있다. 종로구 무악동 한양도성을 주변으로 조성된 행촌권 성곽마을. 1천950세대에 6천명 정도가 산다.
이곳은 서울시가 2016년 도시농업 특화마을로 지정했다. 26억 원의 사업비와 시 소유 유휴지, 앵커시설 3곳 등을 제공하며 도시농업 자립마을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는 "행촌권 성곽마을은 노후 저층주거지 밀집지역으로, 도심에 있지만 유휴지가 많고 구릉지라는 특성상 채광과 공기가 좋아 도시농업에 최적화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찾은 행촌권 성곽마을 텃밭에서는 상추와 고추, 호박 등이 쑥쑥 크고 있었고, 옆에 자리한 육묘장에는 온갖 모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오가며 수시로 텃밭에 물을 준다는 행촌권 도시농업마을공동체 김동수 공동대표는 대뜸 "노랗게 익어가던 호박을 어제 밤사이 누가 몰래 따갔다"며 몹시 아쉬워했다.
그는 "내가 평생 슈퍼를 경영해 농사는 2년 전 처음 해봤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며 "우리가 함께 농사 짓는 모습을 보면 지나가면서 다들 부러워한다. 참여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늘어나는데 그러려면 땅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시는 한양도성 보전의 원칙 아래 2014년 7월부터 주거지 환경개선,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한양도성 9개 권역 22개 성곽마을을 대상으로 주민 중심의 재생계획을 수립해 나갔다.
시는 인왕산 자락 돈의문 뉴타운과 재개발구역 사이에 끼어 있어 어느 관리계획에도 속해있지 않던 이 지역을 '성곽마을 재생계획' 수립과정에 포함시키고 설명회를 열어 주민 의견을 들었다. 그 결과 주민들은 도시농업 중심의 도시재생을 선택했고, 2016년 2월 주민 중심 도시농업공동체가 발족했다.
지난 2년여 동안 행촌권 도시농업마을공동체에서는 상추, 고추, 가지, 토마토, 옥수수, 수수, 조 등 4만본의 모종을 키워 종로구청에 납품해 800만원, 부암동양봉장에서 벌을 키워 2천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행촌권 도시농업마을공동체 유완식 총무는 "처음에는 벌 소리만 들어도 무섭고 심지어 벌에 집중적으로 쏘여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적응이 됐다"며 웃었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는 주로 회원들끼리 나눠 먹지만 인근 음식점에 팔기도 한다. 허브농원, 약초텃밭도 운영하고 있고, 독립문초등학교 등 10여개소 옥상경작소에서는 학생과 주민들이 상자텃밭을 함께 가꾸고 있다.
도시농업교육도 진행한다. 도시농업 심화과정 및 특화교육을 지금까지 17회 열어 340명이 참여했다. 양봉교육도 48회 마련해 960명이 참여했다.
이러한 일들은 앵커시설인 '행촌공(共)터' 1~3호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1호점은 도시재생센터, 2호점은 공동작업공간, 3호점은 상설교육장으로 활용된다.
2호점에서는 겨울에 다같이 모여 김장도 한다. 지난해는 이틀에 걸쳐 400포기를 담가 경로당과 어려운 이웃에 나눠줬다. 말 그대로 '마을공동체'의 정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진정한 '도시재생'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아직은 시범사업 수준이고, 공동체 회원 20여명이 주축이돼 꾸려나가고 있다. 현재 매출의 대부분은 다음해 농사와 양봉을 위해 재투자되고 있다.
유완식 총무는 "현재는 부업수준이고 회원들만 참여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협동조합 형태의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야한다"며 "인삼 등 고부가가치 작물 생산과 함께 한양성곽을 따라 문화유산 탐방코스 등을 만들어 수익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너도나도 재개발과 재건축을 원하는 서울에서 이곳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행촌권 도시농업마을공동체 김동수 공동대표는 "이 동네는 보통 30~50년씩 쭉 살아온 주민들이 많다. 노후주택을 재건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서울시의 도시재생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시가 기반시설을 많이 바꿔주려고 하고 있고 여러 새로운 시설을 유치하려고 하는 등 다른 부분에서 신경을 써주고 있다"면서 "하지만 도시재생을 위한 도시농업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주민들은 텃밭에서 고부가가치 사업을 발굴해 안정적 수익구조를 만들고 시는 교육을 통해 도시농부의 역량을 강화시켜 새로운 도시농업공동체 마을 모델을 만들어나가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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