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판문점 회동] 김정은, 왜 판문점行 선택했나…트럼프와 신뢰 과시
'하노이 노딜' 로 실추된 리더십 만회 과시…북미관계 개선 의지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2일 만에 전쟁과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시 만났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최고지도자로는 사상 처음 북한 땅을 밟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악수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친분을 과시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1분여에 불과한 짧은 월경에 "트럼프 대통령이 분계선 넘은 건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대내외에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를 까딱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던 그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비무장지대(DMZ) 만남 제의를 전격 수용, 정치·외교적 이득을 최고로 만들어내 국가적 위상을 극대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리를 위해서면 유연성과 파격을 주저하지 않는 김정은 위원장이 가진 예측 불허의 결단력과 리더십, 승부사적 기질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결정에는 하노이 노딜로 실추된 김정은 위원장의 정치적 위상과 리더십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북한에 유리한 대내외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하노이 노딜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 만회를 위해 총력전을 펴온 북한 입장에선 판문점에서 '전쟁과 분단의 원흉'으로 주장하는 미국의 최고지도자와 동등한 자격으로 다시 상봉한다는 사실은 내부적으로 김 위원장의 권위와 위상을 끌어올릴 수 있는 최적의 소재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DMZ 만남 트윗 글에 5시간 15분 만에 호응하면서도 '공식 제기'를 받지 못했다며, 사실상 김 위원장이 나올 수 있도록 명분을 마련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도 최고지도자의 위상을 중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중 정치'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 '먼저 찾아와 손을 내민 상대'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춘 것이어서 주민들에게 설명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상황이다.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제일 중시하는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중하게 만남을 요청했고, 김 위원장이 이를 너그럽게 수용했다는 것으로 포장한다면 하노이 회담 결렬로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는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가 김 위원장이 먼저 보낸 친서에 대한 답신임에도 이를 숨긴 채 마치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선(先) 행동'으로 포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남을 전격 결정한 데는 북미 정상의 친분과 신뢰를 바탕으로 북미 대화를 지속하고 북미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국정운영과 장기비전의 연장선에서도 풀이된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빈손' 귀국 이후에도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성장' 노선을 유지하며 경제난 해소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형국이다.
정상외교에도 '후원국' 중국이나 러시아 등 우호 국가들과 교류·협력은 여전히 한계에 부닥치고, 유엔을 중심으로 한 대북제재는 갈수록 거미줄처럼 촘촘해, 경제성장은 고사하고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당장 기아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도 최근 시 주석과 회동에서 새로운 전략적 노선에 따른 경제발전과 민생개선에 노력하고 있다며 외부환경이 개선되길 희망한다고 말하는 등 어려움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경제난 타개와 민생고 해결을 위해서는 북미 관계를 반드시 개선해야만 하고 이를 위해서는 북미 정상의 친분과 신뢰만큼은 절대로 훼손하지 않고 유지해야 하는 셈이다. 특히 손을 내밀었을 때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이날 취재진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하와 나 사이 존재하는 그런 훌륭한 관계가 아니라면 아마 하루 만에 이런 상봉이 전격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훌륭한 관계로 남들이 예상 못 하는 좋은 일들을 계속 만들면서 맞닥뜨리는 난관과 장애를 견인하고 극복하는 그런 신비로운 힘으로 될 거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실패에 대한 첫 입장 표명 자리인 시정연설에서조차 결렬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 관계에 대해서는 "두 나라 사이의 관계처럼 적대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여전히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생각나면 아무 때든 서로 안부를 묻는 편지도 주고받을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의 지속적인 정체국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저 생일 축하 친서를 보내는가 하면 북한 당국자들은 시종일관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우며 긍정적 평가를 유지했다.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김 위원장의 의지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친분과 신뢰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행보로 이어지며 향후 북미 비핵화 대화 재개와 한반도 정세 완화 노력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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