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0년 첫 발견 '과수 에이즈' 화상병…백신·치료제 왜 없나
증상 발현 전엔 균 검출 안 되고 발현 후엔 박멸 어려워
이스라엘·미국, 과수원 폐원→발병 가지 제거 전환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나무가 불에 탄 것처럼 말라 죽는 과수 화상병이 세계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239년 전인 1780년이다.
당시 미국 뉴욕 허드슨 밸리 근처의 사과, 배, 모과 나무에서 첫 의심 증상이 포착됐다.
100년이 넘도록 원인조차 밝혀지지 않다가 1882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의 한 교수가 병원균을 확인하면서 지금의 화상병(Fire Blight)이란 병명이 붙여졌다.
1900년대 이후 캐나다와 뉴질랜드, 유럽, 중동, 아시아로 확산했다.
이렇게 퍼진 화상병이 지난달부터 충북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하지만 예방이나 치료는 현재도 속수무책이다. 병든 나무를 뿌리째 매몰하는 것이 확산을 막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항체를 형성해 화상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주는 백신이나 발생 후 쓸 수 있는 치료제가 200년이 넘도록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병이 발생한 과수원에서는 3년간 다른 나무도 키울 수 없다.
'과수 에이즈', '과수 구제역'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농정당국에 따르면 개화 전 살균제를 뿌리고 개화 초기부터 항생제를 뿌려 주는 게 대책이라면 대책이다.
화상병 병원균은 짧게는 3년, 길게는 20년의 잠복기를 거쳤다가 섭씨 25∼29도의 습한 날씨로 나무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발현한다.
병원균이 잠복하는 나무를 미리 베어내면 화상병 확산을 예방할 수 있겠지만, 사전에 감염 여부를 진단할 방법이 아직 없는 게 문제다.
충북농업기술원 관계자는 "화상병 증상이 나타난 가지를 분석하면 병원균이 검출되지만, 같은 나무의 멀쩡한 가지에서는 균이 검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병원균에 감염됐더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간이·정밀검사를 해도 모두 '음성'으로 나올 뿐이다.
잠복기에는 정체를 결코 드러내는 일이 없는 병원균의 이런 특징 때문에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어렵다는 게 농정당국의 설명이다.
잠복기가 워낙 길어 감염된 나무가 당장 죽는 게 아닌 데다가 병원균 박멸의 어려움을 안 뒤 과수원 폐원보다는 관리로 방향을 바꾼 국가도 있다.
과수원을 폐원했던 이스라엘은 요즘 병이 생긴 가지만 잘라내는 방법을 쓰고 있고, 미국도 가지만 제거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감염된 나무만 뽑아내는 방식을 택했고, 스페인은 감염된 나무와 주변 나무를 제거하고 있다.
이들 국가보다 뒤늦은 2015년 화상병이 처음 발생한 우리나라는 과수원의 모든 나무를 매몰 처리하고 있다.
농정당국 관계자는 "과수 산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현 상황에서 과수원 단위로 나무를 매몰 처리하는 게 그나마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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