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쓰고 찍은 DMZ 사진들…북한 대사도 꼭 보러 오길"
6·25 맞아 최병관 작가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 전시회
"전쟁은 동식물, 무생물에까지 슬픔 남겨…반드시 사라져야"
(자카르타=연합뉴스) 성혜미 특파원 = "비무장지대(DMZ) 민간인 출입은 제가 처음이었기에 촬영하다 죽어도 절대 이의제기를 하지 않겠다고 유서를 쓰고 찍은 작품들입니다"
최병관 작가는 24일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서 '한국의 DMZ 평화생명의 땅 사진전'을 개막하기에 앞서 가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최 작가는 1997년 국방부 의뢰로 이듬해까지 비무장지대 249km를 동서로 3차례 왕복하며 사진과 영상 촬영작업을 했다.
2000년 6월부터 3년간은 경의선 복구작업 과정을 촬영했고, 이후 방송사들의 DMZ 다큐멘터리 촬영작업에도 수차례 참여했다.
그는 "1997년 당시에는 DMZ에 민간인이 처음 들어가는 거라 국방부 장관이 촬영을 명령했음에도 제약사항이 많았다"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아무 말 하지 않겠다'고 유서를 써서 제출한 뒤 본격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38선은 지도에나 선이 그어져 있지, 실제 그 공간에 있으면 넘어가면 북한이고 내려오면 남한인 상황"이라며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찍은 작품들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처음 최 작가가 DMZ에서 사진·영상을 찍을 당시에는 11명의 수색대원이 실탄을 장착한 채 수색로를 따라 함께 다녔고, 적군의 감청 때문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수신호로 대화했다.
최 작가는 "지뢰 때문에 절대 수색로를 벗어나면 안 된다고 했는데 하루는 사람의 발 모양을 닮은 꽃이 보였다"며 "'아, 국군이 죽어서 저 꽃으로 태어났나 보다'라는 생각에 수색로에서 네 발짝 더 들어갔는데 거기가 지뢰밭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색대원들이 보자마자 움직이지 말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식은땀이 흘렀고 10분 넘게 혼자 제자리에 있으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며 "정훈참모가 구해주면서 '또다시 이러면 죽음밖에 없다'고 한 말이 생생하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최 작가는 DMZ가 지구상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공간임을 강조했다.
그는 "전쟁의 잔해가 사방에 흩어져 있고, 황구렁이를 비롯해 희귀한 동식물이 분포해있다"며 "DMZ를 직접 다니면서 두 눈으로 보니까 평화와 생명, 그 이상 소중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녹슨 철모의 총탄 구멍 사이로 야생화가 피어있는 장면을 보고 억수같이 눈물이 쏟아졌다"며 "전쟁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 무생물에도 슬픔을 남긴다. 전쟁은 반드시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동안 유엔본부 특별전 등 국내외에서 총 44차례 개인전을 한 최 작가는 재인도네시아 한국문화원 주관으로 45번째 전시회를 이날부터 다음 달 20일까지 자카르타 시내 인도네시아 국립박물관에서 연다.
천영평 한국문화원장은 "아세안 수장국이자 우리 정부의 핵심 협력국인 인도네시아에 한국을 보다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DMZ는 한류와 더불어 한국의 현실을 무엇보다 잘 표현하는 상징이자 관광자원"이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끝으로 최 작가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DMZ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길 바란다"며 "6·25에 맞춰서 하는 전시회인 만큼 주인도네시아 북한 대사도 꼭 관람하러 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최 작가의 대표작인 '평화의 꽃을 피워주세요', '자유의 다리', '노송의 침묵' 등은 물론 인도네시아 전시를 위해 새로 촬영된 신작도 선보인다.
noano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좋아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