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지하실 살풍경…'B동 301호'에선 무슨 일이
삶과 죽음, 인체 작용 탐구하는 젊은 작가 심래정
8월 25일까지 아라리오뮤지엄서 개인전…드로잉 애니 등 전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19일 찾은 서울 종로구 원서동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아라리오뮤지엄). 1층 한옥 카페는 다과를 즐기는 이들로 가득 찼다. 이웃한 벽돌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바깥과는 전혀 다른 '살풍경'이 펼쳐졌다.
녹색천으로 덮인 테이블, 그 위에 올려진 주황색 덩어리와 메스, 가위. 수술실 풍경이 떠오른다. 그사이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벽면에 투사된 흑백 드로잉 애니메이션을 훑는다. 내용은 종잡을 수 없다. 누군가 납치를 당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나 싶더니, 신체 봉합 과정을 거쳐 새로운 생명체가 등장한다.
아라리오뮤지엄 지하전시장에서 열리는 미술가 심래정(36) 개인전 'B동 301호' 전경이다.
심래정 작업은 삶과 죽음을 일상적인 존재처럼 다룬다. 자연히 인간 신체를 소재로 한 내용이 많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지켜봤다. "어머니가 수술하고 치료받는 과정을 보면서 인체 내부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몸의 일부라도 고장이 나면, 사람 정신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도 알게 됐고요." 그는 어머니 임종 순간에도, 인체 변화를 지켜보며 일어난 호기심이 슬픔 못지않게 컸다고 고백했다.
작가는 평소 사건·사고 기사를 자주 찾아보고, 관련 서적이나 동영상도 검색한다. 요즘은 성형수술 동영상을 즐겨본다. 그러다 생각나는 것들을 드로잉한 뒤, 이들을 연결지어 새로운 맥락의 이야기를 만들고 애니메이션을 완성한다.
작가의 집 호수에서 제목을 따온 이번 전시 또한 인체를 소재로 삼았다. 애니메이션과 드로잉, 설치, 벽화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을 펼쳐냈다.
절단이나 해부 같은 대상을 다루는 데 부담은 없을까. 작가는 "처음에는 섬뜩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호기심이 들고 흥미롭다"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는 (이야기 속) 해부가 다른 대상을 공격하는 쪽이었다면 요즘은 공격성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라면서 "신체 부위의 봉합이나 재조합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을 관찰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바뀐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심래정이 손으로 쓱쓱 그린 드로잉 애니메이션은 전율하는 선들이 인상적이다. 이번에는 애니메이션이 1970년대 지어진 건물의 적벽돌에 그대로 투사된 탓에 리드미컬함이 더하다.
작가는 "컴퓨터를 잘 못 다루기도 하고, 노동집약적 행위를 좋아해 손으로 계속 작업한다"라면서 "검정이 드로잉이나 영상 작업할 때 가장 빠르게 잡히는 색깔인 것 같아 흑백 드로잉을 한다"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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