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전문가들, 아베 총리의 美·이란 '중재외교' 엇갈린 평가
"일본 외교 위상 높였다" vs "미 강경파에 악용될 가능성"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하네다공항을 통해 2박 3일 일정의 이란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지난 12일 오후 전용기편으로 테헤란에 도착한 아베 총리는 방문 첫날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회담하고 이튿날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약 50분간 만났다.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 목적 중 하나는 핵 문제를 놓고 격하게 대립하는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얻은 성과라고는 미국에 대한 이란의 강경한 입장을 알리는 자리를 마련해 준 것뿐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일본 전문가들도 엇갈린 평가를 하고 있다.
와타나베 쓰네오(渡部 恒雄) 사사가와(笹川)평화재단 수석연구원은 14일 마이니치신문과의 대담에서 아베 총리의 이번 이란 방문이 "일본의 존재감을 높였다"고 일단 긍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아베 총리의 방문이 매우 좋은 타이밍에 이뤄졌다고 주장한 와타나베 연구원은 이번 일로 국제 외교무대에서 일본의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다면 원유 수출 요충지로 일본 경제에도 사활이 걸린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수 있다며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은 일본 국익에도 직결되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와타나베 연구원은 "미국과 이란 사이의 갈등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고, 그것을 전 세계가 알고 있다"며 아베 총리의 방문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국과 이란 사이에 '소통 채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돌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란은 즉시 일본에 연락할 수 있고, 아베 총리는 곧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전화 통화할 수 있는 점을 들어 이번 방문을 통해 역내 긴장 완화가 가능함을 세계에 보여줬다고 말했다.
군사적 충돌을 피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점수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와타나베 연구원은 다만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은 일본 정부가 미국과 이란 간 갈등에 말려든 것을 의미한다며 일본이 짊어지는 짐이 하나 늘어난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나 이란 모두 치켜든 주먹을 쉽게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문제 해결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일본이 국제사회의 기대를 받게 된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다나카 고이치로(田中浩一?) 게이오(慶應)대 대학원 교수(정책·미디어연구과)는 "이란 입장에서 보면 마음대로 핵 합의에서 이탈해 국제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은 미국"이라며 이란은 미국이 말하는 형태로의 직접 대화에 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얻은 기회가 이번 아베 총리의 방문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이 미국과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데 이란 측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미국이 핵 합의 복귀를 약속도록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할 수 없는 이상, 일본은 미국이 금지하는 이란 원유 수입을 계속하는 것으로 중립적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나카 교수는 그러나 일본은 이번에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 나선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큰 진전이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아베 총리도 준비된 문건에 근거해 말하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다나카 교수는 이란과의 핵 합의를 지키겠다고 하는 유럽 입장에서도 아베 총리의 이란 방문은 사태를 호전시키는 요인이 되지 못하는 등 모든 당사자가 궁지에 빠져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아베 총리가 로하니 이란 대통령에게 "조만간 다시 만나자"라고 했지만 2차 회담이 성사될지 불투명하다며 일본의 외교 노력이 이번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과정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나카 교수는 아베 총리의 중재 외교 행보가 미국 강경파에게 악용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행정부 내의 대 이란 강경파가 '일본과 같은 특별한 관계를 가진 나라까지 나섰는데 이란이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면서 외교적 해결의 중단을 선언하고 군사적 대응을 시작하는 빌미로 활용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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