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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위해 부당한 공권력 행사"
경찰청 진상조사위 "정보력·물리력 총동원해 비례원칙 위반"
불법행위 없는데도 체포조 편성…송전탑 반대 분신 '안전사고'로 축소
주민 건강·재산권 침해 심각…정부 사과·재발방지 대책 권고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경찰의 과도한 물리력 행사와 위법한 정보활동으로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13일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경찰청에 재발 방지 및 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사건은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한국전력과 해당 지역 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갈등을 일컫는다.
밀양 송전탑 공사는 울산 울주군 신고리 원전 3·4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를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로 보내려고 90.5㎞ 구간에 송전탑 161기를 세우는 '신고리 원전-북경남변전소 765㎸ 송전선로 건설사업'의 일부다.
공사는 2008년 8월 첫 삽을 떴지만, 전자파가 건강에 미칠 악영향과 재산 피해 등을 우려한 주민 반발에 공전을 거듭했고 한전·경찰과 주민 간 충돌이 끊이질 않았다.
공사에 반대하는 주민 2명이 분신하거나 음독해 공사를 둘러싼 여론은 극도로 악화했으며 특히 2014년 6월에는 건설 반대 농성장을 철거하기 위한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경찰력이 투입돼 시위대 과잉진압 논란이 일기도 했다.

◇ 절차적 정당성 부족…주민 건강권·재산권 침해
진상조사위는 우선 한전의 송전탑 건설과정에서 절차적·민주적 정당성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한전은 주민들에게 사업추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2005년 8월께 한전의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밀양 주민은 단장면 50명, 상동면 38명, 부북면 10명, 청도면 28명 등 총 126명으로, 송전선로가 통과하는 5개 면 인구(2만1천69명)의 0.6%에 불과했다.
청도 각북면 삼평리에서는 당시 이장이 2006년 주민공청회에 주민 50명이 참가한 것처럼 주민의견서를 위조해 군청에 접수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밀양과 청도 주민들의 건강권과 재산권 피해가 심각한 상황에도 적절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진상조사위는 지적했다.


◇ 과도한 경찰병력 투입…정보활동도 위법 논란
진상조사위는 송전탑 반대 운동에 대한 경찰 대응의 문제점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송전탑 및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국책 사업'으로 여기고 송전탑 건설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나 활동을 정보력과 물리력을 동원해 저지하려 했다.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2013년 9∼10월 당시 이성한 경찰청장은 밀양을 방문해서 엄정 대처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며 "구체적인 지시가 이뤄진 것을 확인한 바는 없지만, 전체적인 기조는 강경 기조 방침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에서는 국책 사업은 당연히 진행해야 한다는 관행적 논리가 있었고 농성은 진압하는 쪽으로 경찰병력을 운용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 것이 바탕에 깔려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강경 기조는 당시 경찰과 검찰, 지방자치단체 등이 참가했던 공안 대책회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진상조사위는 설명했다.
실제 경찰은 공사재개에 따른 경력의 지원 일정, 투입 인원수 및 배치, 차량 통제 방안 등을 일일이 한전과 논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공사가 재개되고 행정대집행이 있자 경찰은 농성자보다 수십 배 많은 경력을 동원해 반대 주민을 체포·연행하고 해산시켜 송전탑 공사가 가능하도록 협조했다.
당시 밀양에서는 주민들의 통행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경찰은 '3선 차단' 개념으로 송전탑 반대 주민들의 통행을 제한했다.
밀양이라는 소도시에서 마을 입구부터 적용된 '3선 차단'은 반대 주민과 활동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의 이동권마저 침해했다.
행정대집행이 이뤄진 2014년 6월 11일에는 충돌이 극에 달했다.
당시 경찰은 과도한 경찰력을 투입해 천막을 찢고 들어가 주민들이 목에 매고 있던 쇠사슬을 절단기로 끊어내 밖으로 끌어냈다. 또 옷을 벗은 고령의 여성 주민들이 남성 경찰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오는 등 인권침해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고 진상조사위는 지적했다.
청도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21일 청도에서 공사가 재개되자 경찰은 농성 주민의 수십 배에 달하는 경찰력을 투입해 텐트를 부수고 주민과 연대 농성자들을 담요에 말거나 의자째 들어내는 방식으로 옮기고 연행했다.
수많은 주민이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됐으며 이 과정에서 부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이런 대응은 경찰관의 직권은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행사돼야 한다는 경찰관직무집행법 규정과 공정·중립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진상조사위는 지적했다.
반대 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정보 경찰의 위법한 활동도 드러났다.
경찰은 불법행위가 발생하기도 전에 특정 주민의 이름과 나이, 처벌전력을 파악해 검거대상으로 분류하고 전담 체포·호송조를 별도 편성해 마을별로 배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정보관별로 특정 주민을 배당해 관찰과 순화·설득 작업을 벌이도록 했으며, 이 같은 경찰 활동은 주민들에게 회유와 협박으로 받아들여 졌다.
경찰은 또 송전탑 건설 반대행위에 대한 강경수사 방침을 세우고 사복 채증 조를 편성해 상시로 광범위한 채증 활동을 벌였다.
밀양에서는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이 분신을 선택하자 경찰은 이를 '안전사고'로 축소·은폐해 발표하는 일도 있었다. 청도에서는 관할 경찰서장이 한전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처벌되는 일도 있었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진상조사위는 지적했다.



◇ "인권침해 사과·재발 방지 대책 마련해야"
진상조사위는 주민들이 여전히 심각한 스트레스와 외상을 겪고 있다며 한전은 주민들의 재산·건강권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상조사위는 또 경찰청장에게 심사결과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특히 주민들에 대한 불법사찰이나 회유가 없도록 정보 경찰의 업무와 역할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채증 활동규칙을 개정해 촬영행위의 요건과 방식 등을 제한할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정부에는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제기준을 실행할 절차적 방안을 강구하고 주민들의 피해 상황에 대한 실태조사와 치유방안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진상조사위는 이번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사건 조사 결과 발표를 마지막으로 활동을 종료한다.
진상조사위는 그동안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운동, 평택 쌍용자동차 농성 및 진압, 용산 화재 참사 등에 대한 진상조사를 해왔다.
kihu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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