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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파·입체파, 현대미술 혁명가들이 함께 왔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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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파·입체파, 현대미술 혁명가들이 함께 왔다(종합)
佛 트루아현대미술관 레비컬렉션 정수, 세종문화회관 전시
아시아 첫 전시하는 드랭 '빅벤' 등 원화 68점 포함해 140여점 나와
현대미술 출발 두 사조의 다채로운 면면 감상 기회…"보험가만 1조5천억"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시계탑 위로 높이 떠오른 태양이 사방에 빛을 내쏜다. 한낮 풍경을 그리기 위해 건너편에 이젤을 펼친 화가가 고른 색은 빨강·주황·노랑이 아니었다.
작가는 작열하는 태양볕부터 벽돌로 쌓아 올린 시계탑, 그 앞을 흐르는 강까지 화면을 온통 파란색과 초록색으로 뒤덮었다. 강물의 반짝임은 이와 대비되는 노랑과 분홍으로 표현했다.
지금까지 이런 빅벤은 없었다. 1906∼1907년 영국 런던을 다녀온 앙드레 드랭의 그림 '빅벤'을 본 화상 앙부르아즈 볼라르가 했음 직한 말이다. "내 예상대로 그림은 새로운 화법을 펼쳤고 다른 세상에서 나온 듯 화가의 기개가 넘쳤다."
드랭을 위시한 야수파(포비즘), 곧이어 등장한 입체파(큐비즘)는 '다른 세상'을 열어젖혔다. 이들은 각각 눈앞의 색채와 형태를 그대로 옮기는 것에 반기를 들며 미술에 혁명을 일으켰다. 20세기 초 현대미술 출발점에 놓이는 두 사조의 주요 작업을 망라한 전시가 한국에 차려졌다.
12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혁명, 그 위대한 고통- 20세기 현대미술의 혁명가들'에는 원화 68점을 비롯해 각종 아카이브 등 140여 점이 나온다. 전체 보험평가액만 1조5천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 전시를 주관한 기획사 코바나컨텐츠 설명이다.



◇ '빅벤'부터 '샤투의 밤나무'까지…야수파 걸작 한 자리
"지금 파리는 마티스와 피카소 패거리, 두 진영이 지배한다"는 화상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처럼, 100년 전 현대미술의 용광로였던 파리는 야수파와 입체파의 등장으로 더 들끓었다.
이번 전시는 야수파라는 이름이 탄생한 1905년 '살롱도톤' 7번방을 재현한 공간에서부터 본격 시작한다. 강렬한 색채로 뒤덮인 7번 전시장은 진보적 색채의 '살롱도톤' 전시 내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전시되는 드랭 대표작 '빅벤'은 미술관 내 별도 공간에 걸렸다. 배경음악으로 깔린 빅벤의 종소리가 감흥을 더한다.
화상 볼라르 의뢰로 그린 '빅벤'은 템스강을 아름답게 그려낸 과거 그림들과는 사뭇 다르다. 색채와 빛의 변화를 보여주는 클로드 모네의 '웨스트민스터 아래 템스강'(1903)과 비교해도 파격적이다. '빅벤'은 당시 산업화로 격변기를 맞은 새로운 런던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드랭의 또 다른 작품 '하이드파크'(1906)도 야수파 특징인 강렬한 보색과 과감한 붓터치를 보여준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샤투의 밤나무'(1906)에서는 "색채로 숲 전체를 모조리 태워 버리겠다"고 선언한 작가의 격정이 느껴진다.
이밖에 키스 반 동겐, 모리스 마리노 등 야수파의 다채로운 면면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 '괴상한 사각형' 혹평받던 입체파…피카소 중요 조각도 출품
전시의 또 다른 기둥은 입체파다. 1905년 전면에 등장한 야수파가 급격히 힘을 잃는 사이, 입체파는 '보이는 형태'가 아닌, 작가가 '생각한 형태'를 캔버스에 구현하며 주목받았다.
입체파 또한 처음에는 세간과 평단의 질타를 받았다. 평론가들은 '괴상한 사각형'을 잔뜩 그려놓았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조르주 브라크와 파블로 피카소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상을 조각내 재구성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대상을 모든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봐야 비로소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영감받은 로베르 들로네 '경주자들'(1924)은 운동장에서 전력 질주하는 달리기 선수를 통해 '속도의 시대'를 드러낸 작품이다. 드랭의 1910년작 '그릇, 접시, 빵이 있는 정물'은 야수파를 대표하는 드랭의 입체주의적 시도를 보여준다.
'입체주의 시인'으로 불렸던 후안 그리스가 1924년 완성한 '그릇과 유리컵'도 이번 전시에 나왔다. 입체파 공간 중앙에는 피카소가 1905년 완성한 청동 조각 '미치광이'가 놓였다.
신혜진 코바나컨텐츠 큐레이터는 "구상회화에 머물렀던 피카소는 1905년부터 조각작업을 하면서 3차원적인 면을 연구하게 됐다"라면서 "'미치광이'는 조각을 통해 입체파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피카소를 비롯한 야수파·입체파에 큰 영감을 줘 현대미술의 조형적 원리가 된 아프리카 원시미술도 별도로 소개한다.



◇ 佛 트루아현대미술관 소장품 첫 한국 나들이
이번 전시에 나온 68점은 프랑스 트루아현대미술관 '레비 컬렉션'에서 선별한 것이다. 이 컬렉션은 유명 기업인이자 수많은 예술가와 교류한 피에르·드니스 레비 부부가 1976년까지 40여년간 모은 미술품 2천여 점으로 이뤄졌다.
1982년 건립된 미술관이 개보수 때문에 2년간 문을 닫으면서 소장품 중 야수파·입체파 명작은 한국에서, 고갱과 마티스 작품은 독일에서 선보인다. 트루아현대미술관 소장품 한국 나들이는 이번이 처음으로, 현지 언론도 이 소식을 전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전시는 끝없이 이어지는 명작 속에서 자칫 길을 잃을지도 모르는 관람객들을 위해 다양한 주제의 소공간과 영상을 중간중간 배치했다.



많은 전시가 작가 소개에만 치중하는 것과 달리, 이번 전시는 스타인과 볼라르,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 등 당대 화상에게도 자리를 내주었다. 대중으로부터 혹평받은 마티스 '모자를 쓴 여인'을 바로 구입한 스타인 일가처럼 이들 화상의 감식안이 현대미술을 견인하는 주요한 동력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마티스와 피카소를 함께 소개하는 공간도 흥미롭다. 당시 열린 마티스와 피카소 2인전 리플릿이 두 작가를 정확하게 절반씩 소개한 점은, 두 작가의 미묘한 경쟁 관계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고전으로의 회귀, 나치 부역 논란 등으로 한동안 저평가됐다가 최근 주목받는 드랭의 소규모 개인전이기도 하다. 전시장 말미에 놓인 드랭 후기 작품은 피터르 브뤼헐, 카라바조 등을 떠올리게 한다.
ai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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