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홈'의 경계막은 어디까지…"세대간에도 방화벽 설치해야"
SH공사, 구로구 항동지구 4단지에 '포인트 게이트웨이' 설치…'단지 내 해킹' 막는다
(서울=연합뉴스) 김지헌 기자 = 아파트의 각 세대는 물리적 벽을 설치함으로써 경계를 보장받고 독립적 주거의 기능을 발휘한다.
그러나 집의 다양한 기능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스마트홈' 시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도 필요하다.
스마트홈 시대를 맞아 '경계'의 개념을 물리적 차원뿐만 아니라 사이버 세계로 확장하는 '세대 간 방화벽'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국내 최초로 적용했다.
4일 찾은 구로구 항동 하버라인 4단지 아파트는 오는 11일 입주를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곳곳에서 한창이었다.
297세대 규모 이 단지는 SH공사가 현대BS&C와 협력해 국내 최초로 세대 내 단자함에 '포인트 게이트웨이'라는 세대 간 방화벽 장치를 설치한 곳이다.
시연을 위해 한 세대의 방화벽을 연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해커가 옆집의 네트워크에 접속한 다음 방화벽을 해제한 집의 장비를 조종하는 모습을 폐쇄회로(CC)TV 영상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해커는 그 집의 조명, 난방을 마음대로 켰다 껐다 하는 것은 물론 전자 도어락까지 열어버렸다. 이런 과정은 몇 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SH공사 측은 "스마트홈에 있는 월패드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킹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스마트홈은 서버와 외부망 사이에 방화벽을 설치해 외부로부터의 해킹을 막는다.
하지만 세대 간 방화벽이 없는 탓에 단지 내부에서 일어나는 해킹 시도에는 속수무책이다.
물리적 보안에 비유하자면 아파트 공동 출입문에만 잠금장치가 있고 각 세대 출입문은 열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해킹당한 집의 단자함에 있던 방화벽을 연결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해커가 네트워크를 스캔해봤지만, 그 집의 정보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고 당연히 제어도 할 수 없었다.
IT 업계는 스마트홈의 해킹 피해 위험성을 이미 여러 차례 제기했다. 방화벽이 있다고 해킹을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잠금장치는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해 1월 '세대 간 사이버 경계벽 구축을 통한 사이버 주거공간 확보'를 골자로 하는 주택법 일부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나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장비 설치를 맡은 현대BS&C 측은 "장비는 개당 20만원대"라며 "건설의 비용적 측면 때문에 건설사들의 애로사항이 있는 것 같다. 4차산업혁명과 초연결 시대로 나아가는 시점에 이런 서비스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SH공사 김세용 사장은 "현재 스마트홈은 해킹이나 사이버범죄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됐다"며 "아직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관이 앞서나가서 기준과 대세를 만들면 민간은 따라오는 경향이 있다. 시범운영 성과를 꾸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시연회에 참석한 윤 의원은 "우리는 벽돌을 쌓아서 세대 간 경계를 구분하고 살아왔는데 사이버공간에서는 경계벽이 없는 상태에서 300, 500, 1천 세대가 같이 산다"며 "공동주택을 만들 때 이런 시스템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SH공사는 올해 말까지 자체적인 스마트홈 보안 기준을 수립하고 앞으로 세대 간 방화벽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j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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