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산책] 겸재의 화폭에 담긴 풍경 펼쳐지는 곳
(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새 명소 서울식물원 인근 한강 변에는 궁산(宮山, 74.6m)근린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예전 파산(巴山), 성산(城山), 관산(關山), 진산(鎭山)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지만, 조선 시대에 공자의 위패를 모신 향교가 들어서면서 숭배의 뜻을 담아 궁산이라 했다.
◇ 그림이 되고, 시가 된 풍광
겸재정선미술관 뒤편에 있는 궁산근린공원 입구로 들어서자 오르막길 양쪽으로 노랑과 빨강 바람개비가 봄바람에 휘휘 돌며 춤춘다.
10분 정도 비탈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누각(樓閣) 하나가 한강을 바라보며 서 있다. '작은 악양루(岳陽樓)'란 뜻을 가진 소악루(小岳樓)다.
원래 궁산에는 중국 둥팅호(洞庭湖·동정호)에 있는 누각에서 이름을 따온 악양루가 있었는데 화재 후 버려졌다고 한다. 영조 때 악양루가 있던 자리에 누각이 재건됐고, 소악루라 불렀다. 지금 누각은 1994년 신축된 것이다.
당시 이 누각에 오르면 안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이 보이고, 한강 줄기가 끝없이 이어지는 진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은 양천현령으로 있던 5년간(1740∼1745) 이곳의 풍광을 화폭에 담았고, 그의 그림을 본 시인 이병연(1671∼1751)은 멋진 시를 지었다.
누각에 올라서니 드넓은 한강 너머로 녹음이 짙은 월드컵공원과 난지한강공원이 건너다보인다.
'겸재 정선이 바라본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 안내판에는 겸재가 강 건너 안현(현재 안산)의 봉홧불을 바라본 풍경을 그린 '안현석봉'(鞍峴夕烽), 남산 위로 달이 뜨기를 소망하며 소악루 일대를 그린 '소악후월'(小岳候月) 그림과 이병연의 시가 함께 담겨 있다.
◇ 미술관과 향교, 그리고 땅굴
소악루에서 조금 오르면 관산성황사(關山城隍祠)란 조그만 건물이 나온다. 예부터 마을을 수호하던 신(神)인 도당할머니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도당할머니는 번영과 행복을 이루게 돕고 악귀를 몰아내고 재앙과 돌림병을 막아줬다고 한다.
궁산 정상은 평평한 풀밭이다. 이곳에선 소악루에서 봤던 풍경이 더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상은 통일신라 때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천고성지'(사적 제372호)다.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행주대첩 전 이곳에 머물며 작전을 짰다고 전한다. 한강 쪽을 바라보니 북서쪽으로 행주산성이 있는 덕양산이 바라다보인다.
궁산공원 나들이는 이것으로 끝이지만 주변에는 아직 둘러볼 곳이 남아 있다. 공원 입구에는 겸재의 작품과 생애를 주제로 하는 겸재정선미술관이 있다. 북한 강원도의 기이한 돌기둥을 그린 '총석정'을 비롯해 '금강내산도', '성류굴', '한벽루' 등 대표작을 만날 수 있다.
공원 입구 왼쪽에는 '궁산땅굴' 전시장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평양전쟁 중 일제가 무기와 탄약을 저장하고 공습을 피하기 위해 굴착한 공간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궁산,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김포비행장 등을 간략하게 설명한 전시물을 볼 수 있다. 맨 안쪽에는 땅굴이 있다. 땅굴은 길이 68m, 높이 2.7m, 폭 2.2m 규모다.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인 양천향교도 있다.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외삼문 왼쪽에는 배출한 인재를 기리는 비석들이 서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9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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