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담 "연기하고 싶을때 만난 '기생충', 믿을 수 없었죠"
"배우의 앙상블은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의 힘"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정말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봉준호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믿기지 않았죠. (웃음)"
31일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박소담(28)은 영화 '기생충'을 처음 제안받은 순간을 이렇게 돌아봤다.
박소담은 '기생충'에서 전원 백수인 기택네 막내딸 기정을 연기했다. 오빠 기우에 이어 부잣집 박 사장네로 들어가면서 기택네와 박 사장네가 얽히게 된다.
그는 "처음엔 누가 장난치는 줄 알고 (봉 감독 연락에) 대답을 안 했고 두 번째 연락받았을 때 만나러 갔더니 감독님이 '왜 사람 말을 못 믿느냐'고 했다. 얼떨떨했다"며 웃었다.
"처음엔 감독님과 일상적인 대화만 나눴죠. 시나리오 받기 전에는 기정이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영화 제목조차 듣지 못했어요. 송강호 선배님 딸이라는 것만 알았죠. 감독님은 '내가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니 다 쓰고 난 뒤에 이야기하자'고 하셨어요. 당시엔 아무것도 모르니까 불안하기도 했죠.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더라고요."
마침내 받게 된 시나리오에서는 특히 기정이 대사가 박소담의 눈에 들어왔다.
"기정이가 욕설도 하는데, 그게 욕설로 느껴지지 않고 기정이만의 말이라고 생각됐어요. 기택네 가족 분위기가 그런 것 같기도 했고요. 전혀 낯설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제 평소 언어습관이라는 것은 아니고요. (웃음)"
실제로는 미대 입시에 실패했지만, 기정은 그 누구보다 전문적이고 자신 있는 태도로 박 사장의 아내 연교를 깜빡 속여넘겨 이 집 막내아들 다송의 미술 과외 교사가 된다. 박소담이 파악한 기정은 당차고 겁 없지만, 관심을 받고 싶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은 막내다.
"감독님이랑 기정이가 100% 확신하고 연교를 속여넘기지 않을 거라고 설정했었어요. 기정이는 실력이 없는 친구는 아니지만, 계속 비켜나가다가 박 사장네 다송이를 만나면서 지금껏 준비해온 것이 빛을 발하는 느낌이죠. 기정이는 사랑받고 자라긴 했지만, 관심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인생 고민 상담을 할 상대도 없었을 것 같고요."
박소담은 현장에서 봉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기정을 차곡차곡 만들어갔다.
"모든 것이 계획된 감독님의 콘티와 동선이 있었고, 현장에서 촬영하기 전에 대화를 나눴죠. 시나리오 읽으면서 대사가 입에 잘 안 붙어서 현장에서 감독님한테 여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먼저 '이 대사 이상하지 않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아셨는지 놀랐어요. 그 장면이 기정과 연교가 다송이에 대해 나누는 대화예요."
무엇보다 기정의 오빠 기우를 연기하는 최우식과의 호흡이 압권이다. 극 중에서 기우가 오빠지만 기정이 누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박소담은 "감독님이 누가 동생인지 긴가민가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며 "실제로도 우식 오빠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다. 참 착하다"고 웃었다.
배우 한 사람의 압도적인 연기로 이끌어가기보다는 출연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영화의 매력에 대해 박소담은 "감독님의 힘"이라고 단언했다.
"감독님의 완벽한 콘티가 있었고 그에 대한 배우들의 믿음이 있었어요. 그 덕분에 현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즐겁게 찍을 수 있었어요. 전에는 "폐 끼치지 말고 내 연기를 잘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가 이번에 영화라는 것이 같이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2013년 단편 영화로 데뷔한 박소담은 영화 '잉투기'(2013),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 '검은 사제들'(2015)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쥔 '기생충'은 박소담에게 소중한 작품이다.
"'기생충'을 만난 것 자체가 저에겐 행복이죠. 제가 이 영화를 통해 밝아졌어요. 관객들도 영화를 본 뒤에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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