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WTO 패소 뒤 韓수산물 검역 강화 조치…'보복' 논란 불가피(종합)
日 "한국산 넙치 등으로 식중독 발생…국민 건강 확보 차원" 주장
日언론 "한국의 수입규제에 대응조치"…"특정국가 검사 강화 이례적"
통관절차 지연돼 韓수출업자 피해 우려…日 추가 조치 취할지 주목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김병규 특파원 = 일본 정부가 내달부터 한국에서 수입하는 넙치(광어)와 조개류 등 수산물에 대한 검사를 강화한다고 발표, 세계무역기구(WTO)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분쟁 판결에서 패소한 데 따른 보복이 아니냐는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후생노동성은 30일 일본 국민의 건강 확보와 식품 안전성 강화 차원의 대응이라며 이같이 발표하고 "(후쿠시마산 등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한국에 대한 대응조치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후생노동성은 "최근 일본 내에서 식중독이 발생하는 것을 고려해 여름철 식중독 증가를 앞두고 국민의 건강을 확보하는 관점에서 실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국산 넙치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는 이유에 대해 "일본 내에서 한국산 넙치 등에서 기생충인 '쿠도아'를 원인으로 하는 식중독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이런 주장은 자국민을 위한 조치라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대응조치로 간주돼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측면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언론의 해석도 후생노동성의 발표와 다른 방향이다.
지지통신은 "후생노동성은 국민의 건강 확보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한국은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후 후쿠시마 등 8개현의 수산물을 금수하고 있어 사실상 대응조치가 될 것 같다"고 해석했다.
산케이신문도 한국산 수산물 규제 강화에 대해 "매우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일본 언론의 해석대로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산 등 수산물 수입규제를 계속하는 한국에 '사실상 대응조치'로 한국산 넙치 등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는 것이라면 일종의 경제적 보복성 조치를 취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시행 이틀 전 일본 언론에 먼저 보도된 후 검역 강화 결정을 한국 측에 통보한 것도 '보복'의 정황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양국 수산물 무역과 관계된 소식통은 "여름이라 식중독이 많은 철이어서 이런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능하니 형식적으로는 보복이라고 하기 어렵다"면서도 "다만 조치를 취한 시점이나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기습적으로 통보한 것을 보면 보복이라는 의심이 짙다"고 말했다.
다른 소식통은 "수산물의 생명이 신선도인 만큼, 겸역이 강화되면 통관 절차가 늦어지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일본 측이 검역 강화와 함께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통관을 늦추는 식의 비관세 장벽을 높인다면 보이지 않는 피해는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더 강도가 높은 조치를 취할지를 주시하고 있다"며 "후쿠시마 인근산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일본의 주요 수산물 수출국 중 하나여서 한국의 대항 조치가 있을 경우 사태가 확전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11일(현지시간) WTO 최고심판기구인 상소기구가 후쿠시마산 수산물 분쟁에서 한국 승소 판정을 내린 이후 "WTO가 분쟁해결 기능을 제대로 못 한다"며 개혁을 주장하고, 한국과 중국에 해당 수산물 수입 규제 해제를 요구하는 등 공세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WTO 상소 기구는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제기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제소 사건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가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며 부당한 무역 제한도 아니라며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판정 직후부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 등은 'WTO 때리기'에 나섰다.
고노 외무상은 WTO 판정 결과가 알려지자 "진정으로 유감"이라며 "한국에 대해 조처의 철폐를 요구해 나가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달 하순 캐나다를 방문한 아베 총리는 WTO의 판정을 문제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내달 오사카(大阪)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WTO 개혁을 논의할 생각을 밝혔다.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 WTO 개혁안을 제시하는가 하면 분쟁 해결 방식을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일본 정부가 10여개 국가와 기관이 일본 측 입장에 지지를 표명한 것으로 파악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23일 도쿄(東京)에서 열린 한일 외교부 국장급 양자협의와 이달 12일 니가타(新潟)시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농업장관회의를 통해 일본산 수산물 수입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했지만, 한국 측은 WTO 판정을 존중해야 하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이처럼 일본 정부가 강공 모드를 취하는 것은 WTO 패소 판정 이후 일본 정부의 대응 실패를 놓고 강도 높은 비판이 내부에서 제기된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17일 집권 자민당의 수산과 외교 부회(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선 "외교실패다. 정부의 책임이 무겁다" 등의 비판이 일었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이달 16일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수산 관련 회의에서 "정부 전체적으로 전략을 짜지 못했다"며 대응 실패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의원으로부터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에 대응조치를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에 조치를 요구하는 의견이 나왔고, 일본 정부 측은 "무거운 지적으로 검토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한국산 수산물에 대해 검사를 실제로 강화하면, 징용 배상 판결 등으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일관계에 더욱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수산물 분쟁과 별도로 일본 측은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대법원의 징용 판결 등과 관련해 국제법이나 국제사회의 룰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와 관련해 한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의 관세를 올리거나 주한 일본대사를 일시 귀국시키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일본은 지난 20일 중재위원회 개최를 한국에 요청한 상태이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내달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은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jsk@yna.co.kr,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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