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으로 돌아온 조남주 "역사는 진보한단 걸 담고싶었다"
"모티브는 구룡성채·사하공화국…읽히는 재미보다 어떤 얘기 전할지 중점"
"페미니즘 작가 부담감 없는데, 페미니즘 소설 쓰는 엄마라는 점엔 여러 생각"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패배한 것처럼 보일지언정, 당장 눈앞에 있는 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걸 믿는데, 그 이야기를 소설에 담고 싶었어요."
'82년생 김지영'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조남주가 3년 만에 신작 장편을 들고 돌아왔다. 도서출판 '민음사'를 통해 펴낸 '사하맨션'이다.
김지영은 이날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신작 소설 출간을 기념해 연 기자간담회에서 '역사의 진보'란 주제의식을 소설에 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이야기 재미나 형식적 완성도, 문학 자체의 예술적 성취보다는 주제의식 전달에 중점을 둔다고 밝혔다.
"내가 가진 질문을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들도 이런 질문을 가졌는지 궁금한 것 같고, 그게 내가 소설을 쓰도록 만들어요. 소설의 형식, 장르에 대한 생각, 이 소설이 어떻게 읽힐지, 기술적으로 어떻게 진행할까 하는 생각보다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가 저에게 우선이에요. 저는 읽히는 재미보다는 어떤 이야기를 전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소설을 쓰는 작가인 것 같아요."
소설 '사하맨션'은 기업 인수로 지어진 가상의 도시국가와 그 안에 있는 기괴하고 퇴락한 공동주택을 배경으로 국가 시스템 밖에 소외된 난민 공동체의 삶을 디스토피아 세계관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곳에 사는 국외자들의 이야기를 작가적 감수성으로 섬세하게 다룬다. 다만 시장 논리가 만능으로 추앙되면서 공공 영역을 잠식하고 파괴한다는 이야기 구조는 다소 진부하고 도식적이어서 아쉽다.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이 밀입국해 들어온 인물이므로 최근 난민 이슈와 연결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난민뿐 아니라 주류에 포함 안 된 사람들, 흔히 소수자 비주류라는 사람들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주인공처럼 밀입국한 인물들, 노인들, 여성들, 아이들, 성 소수자, 장애인 등이 맨션 안에 사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이런 주제의식을 전하고자 창조해낸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자 제목인 '사하맨션'은 두 개의 실제 장소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하나는 옛 영국령 홍콩에 존재한 중화인민공화국 영토 '구룡성채'(九龍城寨)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 극동 연방지구 북부에 있는 사하(Sakha)공화국이다.
사하공화국은 면적이 한국의 30배에 달하는 엄청난 크기에 연교차가 100℃에 달하는 극한의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살기 힘들고 추운 지역 안에 전 세계 50%나 되는 광물이 매장돼 있다고 한다. 그런 은유를 조금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사하맨션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말했다.
구룡성채는 사실 영국령 내 중국 영토일 때도 홍콩과 중화인민공화국 양쪽의 주권이 미치지 못한 특수지역이었다. 거대한 무허가 건축물들로 이뤄지고 상상을 초월하는 인구 밀도를 보인 슬럼이었다. '마굴'로 불리던 이곳은 1993년 철거됐다.
이에 대해 작가는 "이곳에 불법 난민이 모여들면서 인구 밀도가 자꾸 높아졌다고 한다"면서 "이렇게 버림받은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고 사는 게 가능하다는 개연성을 준 지역이다. 외부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고 이발소와 양로원을 갖추고 자경단을 꾸려 치안을 돌봤던 공동체의 모습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 소설은 전작인 '82년생 김지영'보다 먼저 쓰기 시작한 소설이라고 한다. 2012년 3월 첫 원고가 나왔다.
페미니스트 소설 선풍을 불러일으킨 '82년생 김지영'의 경우 "논리적으로 진행된 소설", "밑그림을 그려놓고 구석부터 다 색칠해나간 소설"인 반면, 이번 신작은 "덧그리고 지우고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예상하지 못하고 계획하지 못한 소설에 가깝다는 차이가 있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이 소설은 저에게 '오답노트'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속한 공동체와 한국사회가 뭔가 문제를 잘못 푼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 방식대로 풀어가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오답노트 같아요."
조남주는 이번 신작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페미니즘 주제의식을 포함했다고 전했다. 다만 "페미니즘적 주제만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면서 "소설 쓰는 동안 관심 가진 의문이 소설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 같다. 그래서 여성 간 연대, 낙태, 보육 등 문제가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페미니스트 작가로 불리는 데 대해 "페미니즘 작가라는 데 대한 부담감은 없는데 페미니즘 소설을 쓰는 엄마라는 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면서 "청소년 문화라는 것이 굉장히 상반된 의견을 가진 친구들이 충돌하는 것 같은데, 내 아이가 그사이에 들어갔을 때, 저런 소설을 쓰는 엄마의 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 대해서 생각은 하게 된다"고 말했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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