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임신중지·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 조한진희 지음.
철인 3종 경기를 꿈꿀 만큼 건강했던 저자에게 어느 날 암이 찾아왔다. 잘못 살아서 몸이 아픈 거라는 자괴감, 소중한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질병 때문에 삶의 방향과 계획을 잃은 상실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무력감.
몇 년간 세 글자짜리의 처절한 감정에 부딪혔던 저자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질병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상처 입은 것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 때문이었다. 아픈 몸이 되고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가 건강 중심의 사회임을 알게 되었다"(7쪽)
저자는 세상에는 오로지 건강한 몸만을 '올바른 몸'의 기준으로,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언어는 건강 세계의 언어뿐이었다고 말한다. 그간 쓴 글에 자기 생각을 몇편의 글로 더해 책을 낸 계기도 아픈 몸을 설명할 언어가 별로 없었다는 데 있다.
저자는 질병을 둘러싼 편견과 차별,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구조,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살핀다. 그리고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를 갈망한다.
"질병을 곧 불행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사회가 변화하길 바란다. 몸이 아프다는 생의학적 상태가 곧장 불행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회가 질병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면, 아픈 사람들의 '불행'도 변화한다. 아파도 괜찮다고 사회가 말해줄 수 있다면 아픈 이의 고통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아픈 이의 몸이 변화하게 된다"(12쪽)
책에는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라는 부제가 붙었다. 페미니스트로 활동한 저자는 건강과 관련해 마치 '탈(脫)코르셋'하듯 '탈(脫)건강'하자고 제안한다. 건강을 벗고 질병을 입자는 게 아니라 건강에 대한 강박을 벗어던지자는 뜻이다. 아픈 몸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질병과 아픈 몸에 대한 혐오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 필수라고 말한다.
동녘. 396쪽. 1만6천원.
▲ 임신중지 = 에리카 밀러 지음. 이민경 옮김.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임신중지 권리에 관한 논의도 한층 본격화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임신중지 운동사를 살펴보며 임신중지와 관련해 보편적으로 공유한 '절박한', '끔찍한', '불행한', '소름 끼치는', '후회되는' 등의 생각과 이미지가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를 밝힌다. 임신중지가 '차악' 내지 '필요악'이라는 상식은 국가, 민족, 계급, 인종, 장애, 젠더를 둘러싼 정치 역학의 산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아울러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근원은 법이 아닌 규범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법 개정이나 폐지를 통해 임신중지의 비범죄화를 이룬 국가에서도 보수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임신중지를 범죄화하는 움직임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임신중지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수치', '애통함', '모성'으로 얼룩진 임신중지 규범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르테. 352쪽. 2만4천원.
▲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 올랭프 드 구주 지음. 박재연 옮김
여성 권리뿐만 아니라 흑인 노예, 빈민, 병자 등 소외된 약자와 하층계급에 대한 차별, 부당함을 고발한 프랑스 인권운동가 올랭프 드 구주의 글을 모았다. 책 제목이기도 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은 올랭프 드 구주가 프랑스 인권선언을 빗대 내놓은 선언문이다. 프랑스 인권선언에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언급하지만, 이 인간은 남성만을 의미할 뿐 여성은 이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제1조를 통해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고 천명한다.
이 책은 성차별과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의 폭력, 위선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꿈꾼문고가 기획한 'ff(fine books×feminism)시리즈' 첫 발간물이다.
꿈꾼문고. 128쪽. 1만1천500원.
▲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 = 시몬 베유 지음. 길경선·박재연 옮김
프랑스 여성 정치인인 시몬 베유가 1974∼2010년 쓰고 발표한 연설문 중 중요한 글들을 한데 모았다. 베유는 1974년 프랑스 보건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자발적 임신중단에 관한 법인 일명 '베유 법'을 통과하며 여성인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 인물. 이태 전 세상을 떠난 베유의 글 속에서 생전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억, 유럽 통합, 여성 권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그의 활동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ff(fine books×feminism)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꿈꾼문고. 520쪽. 1만8천500원.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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