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n스토리]'운명처럼 만난 5·18' 미국서 희귀 연구 김하야나씨
5·18 민주화운동 주제로 미 노스웨스턴대 박사논문 준비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5·18은 교과서와 영화를 통해 알고 있던 게 전부였어요"
미국 시카고에 있는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김하야나(31)씨는 자신의 과거를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 자라 광주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김씨가 5·18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대학 시절 우연히 접한 연극 때문이었다.
이화여대 영문학과에서 희곡을 전공한 김씨는 주로 영미권 연극을 접해오다 우연한 기회로 5·18과 관련한 2편의 연극을 보게 됐다.
영미권 연극에 익숙했던 김씨에게 이 2편의 연극은 충격적일 만큼 생소하고 파격적인 형식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박사 과정으로 노스웨스턴대학교 연극과를 선택한 김씨가 연구 방향을 정할 때도 이 연극이 적지 않는 영향을 줬다.
논문 준비를 위해 선행 연구를 찾아보기 시작한 김씨는 5·18에 대해 알면 알수록 깊은 관심이 생겨났다.
특히 연극학에서 파생된 신생학문인 '퍼포먼스 스터디스(Performance Studies)' 분야의 시각으로 본 5·18은 연구할만한 내용이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퍼포먼스 스터디스란 행위 예술을 포함해 인간이 몸으로 보여주는 행동을 연구하는 분야로 국내에선 생소한 분야다.
김씨는 26일 "항쟁 당시 시민들은 분수대에 모여서 궐기대회를 하며 의견을 공유하는 수평적인 퍼포먼스를 보인 반면 전두환 신군부는 헬기에서 전단을 쏟아붓는 등 동떨어진 곳에서 수직적인 퍼포먼스를 보였다"며 "이것 자체가 상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항쟁 기간은 이러한 퍼포먼스의 연속이었다"며 "5·18을 주제로 선택한 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시각으로 1980년 5월 항쟁부터 내년까지 40년 동안 계속 모습을 바꿔온 국내 민주주의와 그것의 원동력이 된 몸의 역할을 규명하는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흘러온 시간순으로 '항쟁하는 몸', '사라진 몸', '증언하는 몸', '현재의 몸'이 주요 테마다.
그의 논문 제목이 'Embodying Democracies(몸으로 민주주의하기)'로 정해진 까닭이다.
김씨는 지난해 6월 책에서만 보던 5·18을 만나기 위해 미국의 한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1년 2개월의 일정으로 광주를 찾았다.
그가 광주에서 5·18을 접하는 사이 '5·18 망언'이 터져 나왔고, 회고록을 낸 전두환 씨의 '사자 명예훼손' 재판이 본격 시작됐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본 김씨는 "군부 정권이 끝난 김영삼 정부 시절의 정의 투쟁이 광주항쟁의 첫 번째 전기"라며 "이후 정사(正史)로 자리한 광주항쟁을 왜곡·훼손하려는 지금이 바로 두 번째 전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너무 우스꽝스러운 내용이어서 대응할 필요도 못 느꼈던 왜곡의 말들이 이제 제도 정치권 안까지 들어오는 상황"이라며 "이런 말은 쉽게 만들어내는 데 비해 진실을 밝히는 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몸으로) 멋지게 대응하는 분들이 있어서 5·18의 역사는 아직 희망적"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오는 8월 미국으로 돌아가는 김씨는 내년에 다시 한국을 찾아 40년 동안의 5·18의 역사를 논문에 담아보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그는 논문을 완성하면 그 내용을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책으로 다시 쓰고 싶다고 했다.
5·18을 영미권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
김씨는 "저의 롤 모델인 지도교수님은 위안부 수요집회를 주제로 논문을 쓴 뒤 책으로 다시 내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꼭 책으로 발간해 5·18의 세계화에 일조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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