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안동교구 50주년…"앞으로도 기쁘고 떳떳하게"
가장 작은 교구…"가난한 농민들과 함께하며 많이 배웠다"
(안동=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 한국 천주교회에서 가장 작은 교구로 꼽히는 경북의 안동교구가 29일로 설립 50년을 맞는다.
교구 내 농민수가 많아 '농민교구', 예산이 크게 부족해 '가난한 교구'로 불리는 안동교구 반세기는 한국 천주교의 살아있는 현대사로 볼 수 있다.
그렇게 작고 가난했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설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묵묵히 실천한 교구라는 평가도 천주교회 안팎에서 나온다.
권혁주 천주교 안동교구장은 23일 교구 청사에서 연 기자 간담회에서 지난 50년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 "비록 어렵고 가난했지만,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며 오랜 시간을 함께한 농민, 신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돌렸다.
그는 "어렵고, 가난한 농민들과 어울려 살면서 많이 배웠다"며 "가난한 사람들 편을 많이 들다 보니 '생명과 평화'라는 가치에 대해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안동교구 신도 수는 작년 말 기준으로 5만1천909명이다. 50년 전 교구 창설 때 2만8천명보다는 두 배가량 불어난 규모다. 하지만 이는 서울 같은 대도시 한 본당 신도 수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비록 작고 가난했지만, 교구가 지내온 50년은 사제와 신자 관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 됐다고 한다.
권 교구장은 "가난하게 살면서 어려웠지만, 함께 신앙생활을 하면서 함께해야 한다는 '공동체 정신' 같은 게 생겼다"며 "가난 자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지난 50년은 남의 도움으로 살아온 것"이라고 돌아봤다.
교구 규모가 작기 때문에 마치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고, 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아니면 누구를 도와야 하는지 늘 공유하며 함께했다는 것이다.
온갖 어려움에도 안동교구가 50년을 이어온 데에는 초대 교구장을 맡아 20년 넘게 끌어온 두봉 주교 역할이 컸다고 한다.
올해로 만 아흔살 두봉 주교는 프랑스에서 온 외국인 신부다. 1950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한 뒤 1953년 사제 수품을 한 이듬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대전교구에서 한국 사제생활을 시작했지만 1969년 안동교구가 만들어지면서 초대 교구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함께한 두봉 주교는 안동교구장을 맡으라는 교황청 명이 떨어졌을 때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유교적 문화가 강한 안동에서 외국인 신부가 새 교구장을 맡는다는 게 지역 정서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 파리외방전교회에도 사양의 뜻을 전했지만, 교황청 명을 끝내 거부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교구장에 온 뒤로 마음 한쪽을 차지한 걱정과 우려는 사라졌다.
두봉 주교는 "솔직히 말하자면 유교에 대해 별로 좋게만 생각하지는 않았다"면서 "이상하게 그분들(유림)하고 잘 통했다"고 웃으며 교구장 파견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대다수 유림이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 양심적으로 정직하다"며 "유교 전통에서 바르고 잘 사는 사람이 천주교 신자가 되면 굉장히 좋은 신자가 된다. 이유는 바탕이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두봉 주교는 50년 전 교구장으로 부임하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교회를 만드는 게 소망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언제나 '기쁘고 떳떳하게'를 신앙을 지닌 사람의 근본으로 여기고 살아왔다.
그가 언제나 되뇐 '기쁘고 떳떳하게'라는 말은 이제 안동교구의 사명이다. 교구가 작고 가난해 힘들었지만 기쁜 마음을 가지고 양심을 가진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다.
두봉 주교는 이날 간담회에서 안동교구장 당시 겪은 이른바 '오원춘 사건'에 관한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오원춘 사건은 1979년 농협에서 배급한 씨감자에 싹이 나지 않자 농민 오씨가 항의하다 중앙정보부에 잡혀가 고문을 받은 일이다.
두봉 주교는 당시 이런 얘기를 듣고 반발하다 추방될 위기에 놓였지만, 교황청이 당시 박정희 정부에 두봉 주교를 추방할 경우 후임자를 임명하지 않겠다고 맞섰고, 이후 박정희 시대가 급작스럽게 막을 내리며 추방은 없던 일이 됐다.
그는 "그 일(오원춘 사건) 덕분에 많은 사람이 천주교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고 회고했다.
과거 50년을 넘어 이제 미래 안동교구 50년을 바라보는 전·현직 교구장의 바람은 단순 명료했다.
권 교구장은 "앞으로도 기쁘고 떳떳하게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했고, 두봉 주교는 "용기 내시라"며 권 교구장 어깨를 두드렸다.
올해 서품 50년을 맞기도 한 두봉 주교는 소감을 묻자 "고맙고 감사드린다"며 동료 사제와 신자, 기자들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edd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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