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전 공화당 '역풍' 지켜본 美민주 지도부, 트럼프 탄핵 주저
클린턴 탄핵 추진하다 부메랑 맞은 공화당 기억 생생…WP "세대간 생각차"
펠로시, 신중기조 고수…발언 수위 높이며 가능성 열고 트럼프 압박도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1998년 12월 미국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 섰다.
여당인 민주당 스테니 호이어 의원과 엘리자 커밍스 의원, 제임스 클라이번 의원, 엘리엇 엥걸 의원 등이 대통령을 엄호하듯 주변에 둘러섰다. 상원으로 올라간 탄핵안은 결국 이듬해 2월 부결됐다.
이후 20년이 지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민주당 내 탄핵 추진 요구가 거세지는 지금 클린턴 전 대통령 곁에 섰던 의원들은 대부분 당 지도부가 됐다.
호이어 의원은 하원 원내대표, 커밍스 의원은 하원 정부감독개혁위원장, 클라이번 의원은 하원 원내총무, 엥걸 의원은 하원 외교위원장이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1998년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을 지켜봤던 민주당 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있어서 속도 조절을 하고 싶어한다고 22일(현지시간) 전했다.
초선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같은 민주당 소장 의원들이 공화당이 다수를 점한 상원에서 부결될 가능성이 큰데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옛일을 기억하는 지도부급 중진 의원들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는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면서 공화당이 대응을 제대로 못 해 부메랑을 맞았던 기억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 공화당의 탄핵 추진에 역풍이 불면서 1998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의석수 5석을 늘렸다. 집권당이 3차례밖에 승리하지 못해 '현직 대통령의 무덤'으로 불리는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로서는 당시 공화당의 실책이 20여년 만에 민주당 버전으로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특검 수사 보고서에 의존해 섣불리 탄핵을 추진하다가 역풍만 불러일으킨 채 자칫 2020년 대선 패배라는 최악의 결과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탄핵 추진을 둘러싸고 세대별로 입장이 갈라지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민주당 일인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역시 탄핵을 추진하려면 반박하기 어려운 혐의가 확보돼 공화당 의원들도 동참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소집된 민주당 비공개회의에서도 탄핵 추진보다는 법적 대응을 포함한 현재의 방식에 집중하자는 의견을 피력했으며 입장 변화의 조짐은 감지되지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션 패트릭 멀로니 하원의원은 비공개회의에서 있었던 펠로시 의장의 발언에 대해 "(지금) 그대로 가자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그러나 펠로시 의장은 탄핵 가능성을 아예 닫아두지는 않은 상태다.
그는 이날 미국진보센터 행사 공개발언을 통해 "대통령은 사법 방해를 하고 있고 은폐에 바쁘다. 이는 탄핵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죄"라고 말하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지난 3월 WP와의 인터뷰에서 탄핵을 지지하지 않는다면서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발언이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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