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서부 잇단 사고] ① 커지는 불안…"이주시켜달라"
주민들 "그 살기 좋던 곳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불안해 살 수 없어"
"자다가 놀라 깨는 날 많아…야간 밝은 빛 때문에 농작물 재배도 차질"
[※ 편집자 주 = 최근 유증기 유출 사고가 발생한 한화토탈 등이 있는 서산은 여수·울산과 함께 전국 3대 석유화학단지로 꼽힙니다. 당진·태안·보령·서천 등 충남 서해안은 전국 화력발전소 61기 가운데 30기도 몰려있습니다. 여기에 당진에는 현대제철을 중심으로 한 철강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충남 서부는 철강과 석유화학을 바탕으로 전국 전력 생산량의 25%를 생산하며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한 축입니다. 하지만 대기 및 수질오염은 물론 잊을만하면 터지는 근로자 안전사고, 각종 유해물질 유출 사고로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충남 서부의 고질적인 환경 문제, 안전사고 등 상황을 짚어보고 대안을 생각해 보는 기획기사 3편을 송고합니다.]
(서산=연합뉴스) 이은파 한종구 양영석 기자 = "하루가 멀다고 터지는 각종 사고에 불안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예전 우리 마을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시켜주십시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를 보인 22일 오후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2리 마을회관.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주민 7명은 이날 오전 발생한 주변 대산공단 입주기업의 암모니아 유출 사고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굳은 표정의 이들은 "잊을만하면 터지는 대산공단 입주기업의 화학사고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며 당국과 해당 기업의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종극(62) 이장은 "이대론 살 수 없다"며 "대산공단을 국가공단으로 지정해 정부가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이 매일 차량과 공장 소음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이번 기회에 주민을 이주시키거나 서울 유명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마을에 사는 주부 김춘환(67) 씨도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김 씨는 "최근 열흘 사이 대산공단에서 주민 생명을 위협하는 화학 사고가 4건이나 발생했다"며 "요즘 자다가 깜짝 놀라 깨는 날이 많다"고 호소했다.
그는 "밤에 공단에서 비추는 환한 불빛 때문에 마늘, 들깨, 양파 농사가 엉망"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무슨 희망을 갖고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요즘 서산 대산공단에서 각종 사고가 잇따르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산읍 도로변과 대산공단 입구에는 서산시와 공단 입주기업을 비판하는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걸려 있다.
서산, 당진, 보령 등 충남 서해안은 예부터 비옥한 땅에 천혜의 자연경관을 갖춰 전국에서 사람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난 곳이다.
이 지역 농산물과 수산물은 생산·어획 즉시 수도권으로 팔려나갈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
여기에 더해 1980년 초부터 서산 A·B 지구와 당진 석문지구 등에 대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되고, 국가 경제를 이끌 대규모 공장이 입주해 부러움을 한 몸에 샀다.
국가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현실에서도 서산과 당진은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드물게 인구가 늘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산업단지 조성 역기능이 하나둘씩 터져 나오면서 주민들 얼굴에 그늘이 지고 있다.
이날 대산읍사무소에서 만난 이황운(58) 대산읍 대산1리 이장은 "서산의 서는 '서녘 서(西)'가 아니라 '상서로울 서(瑞)'"라며 "상서로운 고장이 사고 다발 지역으로 전락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 이장은 이어 "최근 각종 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지역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다"며 "당국은 더는 방치하지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서산 대산공단은 울산, 여수와 함께 국내 3대 석유화학단지로 꼽힌다.
한화토탈, 현대오일뱅크, LG화학, KCC, 코오롱인더스트리 등 굴지의 대기업을 포함한 60여개 기업이 입주해 있다.
입주기업이 많고 대부분 석유화학 관련 기업이다 보니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물동량도 많아 각종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 대산공단의 안전사고가 부쩍 늘고 있다. 주민들은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하고 터진다고 호소한다.
2017년 3건에 불과했던 대산공단의 안전사고는 지난해 10건으로 늘었고, 올해 들어서는 벌써 9건에 달한다.
특히 대산공단 입주기업 상당수가 가동 30년을 넘으면서 시설 노후화에 따른 각종 안전사고 증가가 우려되고 있다.
김기의(55) 대죽리 이장은 "우리는 석유화학기업이 입주하기 훨씬 전부터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기업이 들어오면서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졌다"며 "잊을만하면 터지는 화학 사고로 주민들은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아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상황은 인근 당진도 마찬가지다. 현재 당진에는 국내 굴지의 철강 공장인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가동 중이다.
이 공장 역시 대기오염물질을 다량 배출하는 시설이어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 공장은 지난해 사업장별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에서 전국 1위를 기록했고, 최근 공장에서 청산가스(사이안화수소)가 배출허용 기준보다 5.78배나 측정됐음에도 이를 숨긴 채 1년 8개월간 불법 배출하다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또 일상적인 고로 정비와 재가동 과정에서 비상상황이 아닌데도 대기오염물질 저감장치를 거치지 않은 채 '브리더'라는 긴급밸브를 통해 배출한 사실도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유종준 당진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기업들이 시민과 직원의 안전·환경보다는 이윤 추구에 급급하다 보니 이런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며 "당국은 철강과 석유화학산업단지의 위험성을 고려해 법령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충남 서해안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화력발전소의 안전사고 위험은 석유화학단지와 철강단지 못지않게 크다.
현재 충남에는 전국 화력발전소 61기 중 절반인 30기가 몰려있는 데다 사용 연한(30년)이 지난 노후 화력발전소도 2기나 된다. 모두 당진, 태안, 보령, 서천 등 충남 서해안 4개 시·군에서 가동 중이다.
보령화력 인근인 오천면 오천항에서 만난 주민 김모(57) 씨는 "마을 인근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매일 내뿜는 연기가 대기 환경을 나쁘게 하는 것 아니냐"며 "화력발전소가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는 생각을 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sw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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