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의 벽을 넘은 이상화, 그를 만들었던 7개의 알람
여성·아시아 선수·부상…편견을 이겨낸 위대했던 도전
새벽 5시부터 일과 시작한 악착같은 노력과 땀방울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빙속 여제' 이상화(30)는 편견과 불가능의 굴레를 극복한 선수였다.
이상화는 빙상계 입문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은석초등학교 1학년 때 친오빠 상준 씨를 따라 스케이트장에 갔다가 빙상에 입문했다.
그는 오빠와 경쟁하며 스케이트에 흥미를 느꼈고 각종 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이상화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이상화의 부모님은 상준 씨와 이상화, 두 자녀 중 한 명에게 다른 진로를 권유해야 했다.
주변에서는 '딸보다 아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어머니 김인순 씨는 고개를 저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이상화의 꿈을 꺾지 않았다.
오빠보다 기량이 우수했던 이상화에게 선수의 길을 걷게 했다.
이상화는 훗날 "엄마는 끝까지 내 잠재력을 믿어주셨다. 그 사랑으로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상화는 휘경여중에 진학한 뒤 단거리 종목에 집중했다.
이전까지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종목은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이었다.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는 폭발적인 힘을 요구하는 종목이라 신체 조건이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많은 빙속 유망주들은 높은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쇼트트랙으로 전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정면으로 부딪쳤다.
이상화는 담대하게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했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신념이 그를 버티게 했다.
롤모델도, 따라 배울만한 선배도 없었지만, 이상화는 부족한 부분을 노력과 땀으로 채웠다.
그는 매일 7개의 알람을 맞춰놓고 생활했다.
새벽 5시 기상을 알리는 첫 번째 알람부터 마지막 훈련을 알리는 밤 9시 알람까지, 7개 알람 소리에 맞춰 생활했다.
숨 막히는 '알람 생활'은 최근까지 계속됐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화는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16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다. '저 선수도 하는데 왜 난 못하지'라는 생각으로 훈련에 임했다. 이런 생각이 안 되는 것을 되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여자 5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딴 뒤에는 주변의 기대와 무거운 압박감과 싸웠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상화는 장훙, 위징(이상 중국), 고다이라 나오(일본) 등 끊임없이 나오는 도전자들과 싸워야 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국제 대회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둘 때면 '이상화의 시대가 저물었다'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이상화에겐 고통의 시간이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더했다. 그는 올림픽 직전 시즌 무릎 부상으로 국제 대회에 제대로 출전하지도 못했다.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이상화의 메달 획득 가능성을 낮게 평가했다.
그러나 이상화는 마지막 장애물도 힘차게 뛰어넘었다.
평창올림픽 여자 500m 결승 마지막 곡선주로에서 무릎이 하중을 이겨내지 못하면서 주춤하는 실수가 나왔지만, 당당히 37초33의 기록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마지막 질주를 끝냈다.
이상화는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약 1년 동안 무릎 부상과 싸우며 다시 한번 불가능을 뛰어넘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름다울 때 떠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며 스케이트를 벗었다.
이상화는 "은퇴를 결심한 뒤에도 아쉬움이 남아 7개의 알람을 끄지 못했다"라며 "이제는 꺼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젠 누구와도 경쟁하지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cycl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