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빈곤아동 후원자에게서 45년간 매달 15달러 받은 에이즈 권위자
조명환 건국대 교수 "세이브더칠드런 美 여성후원자가 계속 보내"
"자신감 심어준 가르침에 감사…평생 받은 도움을 나누며 삽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세이브더칠드런을 창설한 영국의 에글랜타인 젭 여사는 "오늘 우리가 돕는 이가 내일 우리를 도울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그의 말대로 전 세계의 많은 이가 세이브더칠드런의 도움으로 굶주림과 질병을 이겨내고 성인이 돼 어린이를 돕고 있다.
그 가운데 조명환(63) 건국대 생명과학특성학과 교수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전쟁으로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195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세이브더칠드런의 해외 결연을 통해 미국의 헬렌 넬슨 씨가 매달 15달러씩 후원했고, 3년 만에 숨지며 언니 에드나 넬슨 씨에게 한국 어린이를 계속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성인이 되면 후원을 중단하는 게 원칙이나 에드나 씨는 죽을 때까지 45년간 15달러를 동봉한 편지를 매달 보냈다. 조 교수와 주고받은 편지가 540여 통에 이른다. 학습 부진 학생이던 조 교수는 후원자의 격려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매달려 미국 애리조나대에서 미생물·면역학 박사학위를 따고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지난 4월에는 미국 MIT 경영대학원 블록체인 최고경영자과정도 마쳤다.
1989년 세계 최초로 에이즈 진단 시약 '크립토스포리디움 키트'를 개발하는가 하면 2000년과 2002년 제약기업 넥솔바이오텍과 셀트리온을 각각 공동창업했다. 2005∼2009년에 이어 2017년부터는 두 번째 아시아태평양에이즈학회장을 맡고 있다. 1990년부터 모교인 건국대에 재직해왔으며 영국 국제인명센터 '올해의 국제과학자'(2006년), 미국 인명정보연구소 '아시아를 대표하는 올해의 인물'(2009년), 대한민국 창조경영대상(2013년), 대한민국 4·19 자유평화공헌대상(2016년), 미국 메릴랜드대 글로벌교수상(2016년) 등에 뽑혔다.
세이브더칠드런 창립 10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찻집에서 그를 만나 후원자의 도움으로 성장한 뒤 나눔에 앞장서게 된 소감을 물었다.
조 교수는 "나 자신도 그렇듯이 불과 몇십 년 만에 도움을 받던 처지에서 도움을 주는 처지로 탈바꿈한 조국이 자랑스럽다"면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구호단체 활동가들과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돕는 후원자들이 있기에 인류의 미래는 밝다고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어떤 계기로 국제구호단체의 후원을 받게 됐나.
▲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이북에서 내려왔다. 어머니가 서울 충무성결교회 주일학교 교사였는데, 젊은 실향민 부부가 아이를 낳은 것이 딱해 보였는지 교회 장로가 국제구호단체를 소개했다. 직원이 집을 방문해 실사한 뒤 미국 후원자를 연결해줬다. 어머니 손을 붙잡고 퇴계로 근처에 있는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실에 들러 한국어로 번역한 편지와 15달러를 받아오던 기억이 난다. 장난감, 옷, 분유 등의 구호품도 받았다. 그때는 15달러가 적지 않은 돈이어서 어머니가 먹을 것을 사서 구호품과 함께 이웃 아이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 성인이 된 뒤에도 에드나 넬슨 씨가 계속 도와준 까닭은 무엇인가.
▲ 세이브더칠드런은 만 18세가 되면 후원을 중단한다. 또 개인정보와 신변 보호, 아동의 상대적 박탈감 예방 등을 위해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한 연락만 허용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나는 따로 영어 편지를 보냈고 45년간 이어졌다. 내가 교수가 된 뒤에도 15달러를 계속 보내준 것은 "너도 나처럼 남을 도우며 살라"는 무언의 메시지라고 여기고 있다.
-- 실제로 후원자를 만난 것은 1996년이라고 들었다.
▲ 미국에서 공부할 때 찾아뵙겠다고 몇 차례 말씀드렸는데 그때마다 거절하셨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려는 뜻이라고 짐작한다. 그런데 에드나 어머니가 99세가 되던 해 어느 날, 이러다가 얼굴을 한 번도 못 뵙고 떠나보낼 것 같아 무작정 찾아갔다. 1주일을 함께 지냈는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5년 뒤 돌아가셨으니 그때 안 만났으면 두고두고 한이 됐을 것이다.
-- 이 사연을 공개한 계기는 무엇인가.
▲ 가난이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자랑할 일도 아니라고 여겨 굳이 남들에게 말하지 않다가 2016년 성경 공부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알려져 주변의 권유로 신앙 간증까지 하게 됐다. 45년 동안이나 후원받았다는 말을 듣고 몇 년 하다가 끊은 후원을 재개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듬해 9월에는 '꼴찌 박사'(두란노서원 간)란 제목의 책도 냈고 그해 11월 KBS 1TV '아침마당'에도 출연했다.
-- 책에는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 아동구호연맹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이름의 단체는 없었다. 뜻으로 보면 세이브더칠드런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2018년 초에 문의했더니 미국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소 화재로 당시의 관련 서류가 불타버렸다고 한다. 낡은 흑백사진 뒷면에 연필로 적힌 등록번호 'KC3868'을 보고서야 몇 달 만에 확인할 수 있었다. 'KC'는 'Korea Children'의 약자다.
-- 에드나 씨의 후원이 자신을 어떻게 성장시키고 변화시켰다고 생각하는가.
▲ 에드나 어머니는 내게 늘 꿈이 뭔지 물었다.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하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고 격려하고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하면 "최고의 소방관이 될 것"이라고 응원했다. 후원금도 큰 보탬이 됐지만 나를 믿어준 그 편지가 나를 노력하게 만들었다. 내겐 꿈이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으로 눈앞에 생생히 보였다. 그분께서 내게 베푸신 사랑의 실천이 내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도 오늘날의 나를 있게 했다.
-- 넬슨 씨처럼 한 어린이의 삶을 변화시킨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 내가 처음 아시아태평양에이즈학회장에 뽑히던 2005년의 일이다. 치료비가 없다며 에이즈 검사를 거부하는 태국의 한 감염 의심자가 있었다. 오랜 설득 끝에 검사하니 양성으로 판정됐고, 임신한 부인과 나중에 태어난 아기도 감염됐다. 부모는 태국 적십자사 지원으로 치료했고 아기는 내가 50만 원을 들여 살려냈다. 5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가 자라나 값진 삶을 살고 남을 도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 국내외 에이즈의 발병 현황은 어떤가.
▲ 전 세계적으로 3천700만 명의 환자가 있고 지금까지 3천500만 명이 에이즈로 숨졌다. 국내에는 1만여 명의 환자가 있다. 치료제가 48가지나 개발돼 에이즈 환자도 약을 복용하면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처럼 일상생활에 큰 지장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약값이 비싸 아프리카 빈곤국에서는 대부분 치료를 포기한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심해 환자로 판명되면 직장을 잃는 경우가 많은 것도 치료비 마련에 어려움을 준다. 차별 때문에 본인이 환자라는 사실을 감추는 것도 문제다. 결핵이나 독감처럼 공기로 감염되는 게 아니어서 성관계만 하지 않는다면 함께 살아도 감염 위험이 없다. 국제적인 지원과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에이즈 치료비를 국가가 부담한다.
-- 세이브더칠드런 창립 이후 많은 국제구호단체가 생겨났지만 지구촌에는 여전히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뾰족한 대안이 없겠는가.
▲ 이제는 대부분 질병이 치료제보다는 치료비가 문제다. 나도 에이즈학회를 이끌며 빌게이츠 재단 등에 후원을 요청하고 각국 정부에 예산 증액을 호소하는 등 온갖 노력을 해오다가 2008년 금융위기로 후원금이 급감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국제의약품구매기구(UNITAID)는 한국·프랑스·영국 등 8개국 항공사와 함께 국제항공연대기금을 만들었다. 비행기 탈 때마다 1달러(비즈니스석은 40달러)씩 적립해 2006년부터 5년 만에 2조 원 넘게 모았다. 이런 방식으로 커피·자동차·화장품 등에 소액 기부금을 합산해 판매하면 경기 변동과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에게 충고와 격려를 부탁한다.
▲ 요즘 청년들은 자신감이 결여돼 있어 조그만 어려움이 닥치면 주저앉고 만다. 나는 학생들에게 토끼와 거북의 이솝 우화를 자주 들려준다. 거북은 다리도 짧고 무거운 등딱지를 지고 있어 토끼보다 조건이 불리했지만 경주에서 이겼다. 승리의 요인은 분명한 목표 의식과 꾸준한 노력이다. 젊은이들도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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