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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팜탄 피해 이라크 남성, 27년만에 기적적으로 가족과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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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팜탄 피해 이라크 남성, 27년만에 기적적으로 가족과 재회
사담 후세인 정권 때 공습 속 가족과 생이별…BBC 제작팀이 재회 다리놔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사담 후세인 철권통치 시절 이라크군의 네이팜탄 공습으로 얼굴을 심하게 다친 이라크 남성이 전란 통에 생이별한 가족과 27년 만에 재회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아마르 카님(40)은 12살 때인 1991년 생지옥을 경험했다. 당시는 수니파인 후세인 정권과 이에 저항하는 시아파 반군 간 무력 분쟁이 격화하던 때였다.
후세인이 지휘한 이라크 정부군은 카님이 살던 남부 바스라지역에 네이팜탄 공습을 가했고, 카님 가족도 이 파괴적인 폭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카님은 당시 누이와 창고에 숨어있다가 화를 당했다.
네이팜탄은 3천℃의 고열을 내며 반경 30m 이내를 불바다로 만드는 강력한 살상 무기다. 그 비인도적인 성격 때문에 현재는 사용이 금지돼 있다.
카님은 이후 이라크의 한 병원에서 의식을 찾았지만, 얼굴 등에 큰 화상을 입어 생사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가족의 행방도 알 길이 없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카님은 내전 조사단의 일원으로 이라크를 찾은 에마 니컬슨 당시 보수당 하원의원의 눈에 띄었다. 니컬슨은 병원에서 카님이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한 생존자라는 말을 들었다.
니컬슨의 모금 운동에 힘입어 영국으로 온 카님은 이듬해 엉덩이 피부를 얼굴에 이식하는 등 무려 27차례 성형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라크 내전 피해의 상징이 된 카님은 이후 BBC 방송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고 유엔 회의에 참석해 외교관들과 면담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했다.
핏줄 하나 없는 타지에서의 생활에 시련도 없지 않았다. 카님은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니컬슨과 인연을 이어오다 1999년 니컬슨의 남편이 사망한 뒤 수년간 연락이 끊겼다. 실직 상태로 어렵게 생활하던 시기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작년 BBC가 카님의 인생사를 다루는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카님과 접촉했다. 카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라고 주장하는 한 여성의 모습이 담긴 영상을 받았다고 제작팀에 소개했다.
제작팀은 조사 결과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일부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자라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이라크 바스라 북쪽으로 약 482㎞ 떨어진 카르발라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 여성은 카님의 어릴 적 사진을 갖고 있었지만 카림은 화상 입기 전 자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릴 때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말을 들은 카님은 갑자기 나타난 어머니의 존재에 반신반의했다.
결국 이 여성은 친모·친자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유전자 검사에 동의했고 99.99%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그는 즉시 이라크로 돌아가 친모인 자라, 그리고 남동생 타흐리르와 재회했다. 폭격 와중에 헤어진 지 무려 27년 만이었다.
카님은 1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 타임스에 "오랫동안 내 삶은 공허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목표가 생겼다"며 "(이라크로) 다시 돌아가서 가족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축복받은 기분이다. 내 삶이 끝내 완전해졌다"며 주체하기 어려운 기쁨을 표현했다.
카님과 재회한 니컬슨도 그가 가족을 찾은 데 대해 "이는 순전한 기적"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lu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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