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이란 문제 불협화음…英 "우발적 충돌 우려" 경고
핵 합의 주요 3국, 공동전선 모색하는 폼페이오에 우려 표명
"핵 합의 지지, 최대한 자제 필요"…핵 합의 탈퇴한 미국 비판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핵 합의를 놓고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고조하는 가운데 핵 합의 당사국인 미국과 유럽 주요국 사이에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2015년 미국·이란과 함께 핵 합의에 서명한 유럽 주요국 외무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면담에서 최근 미국이 이란에 보이는 강경한 태도가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이란 핵 합의(JCPOA)를 탈퇴한 지 1년 만에 이란도 핵 합의에서 정한 핵 프로그램 제한 의무를 일부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자 미국이 유럽과의 공동 대응을 모색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한 모양새다.
유럽연합(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13일(현지시간)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난 제러미 헌트 영국 외무장관은 "상대방이 생각하는 것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진정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헌트 장관은 "무엇보다 우리는 이란이 다시 핵무장을 하는 길로 후퇴하지 않도록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는 어느 쪽도 의도하지 않은 긴장 확대로 인해 우발적인 충돌이 일어날 것을 매우 우려한다"고 강조했다.
WP는 헌트 장관의 발언에 대해 영국이 이례적으로 미국과 이란을 같은 수준으로 놓고 선명하게 비판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AFP에 따르면 헌트 장관은 "만약 이란이 핵무기 보유국이 된다면 이웃 국가들도 핵무기 보유국이 되기를 원할 것"이라고 어조를 높였다.
다른 국가들도 미국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역시 폼페이오 장관과 개별 면담한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독일은 "핵 합의가 이란이 장래에 핵무기를 갖는 것을 막는 토대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이것이 우리의 안보에 실존적인 사안"이라는 뜻을 표명했다고 AFP통신은 보도했다.
핵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미국에 대한 불만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마스 장관은 이번 사태의 전개 방향과 지역의 긴장 고조에 관해 우려하고 있으며 군사적 대치 국면이 확대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을 면담에서 밝혔다고 설명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도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고 AFP는 전했다.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르드리앙 장관은 폼페이오 장관의 면담에 앞서 유럽인들이 단합해 핵 합의를 지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폼페이오 장관과의 면담에서 대화가 "(지역 내) 긴장 확대를 막고 (서로의) 차이를 말하는 유일하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으며 "우리는 이란과의 핵 합의 및 완전한 이행을 계속해서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고 AFP는 전했다.
그는 특히 "최대한의 자제(maximum restraint)와 군사적인 측면에서 어떠한 국면 확대도 피하는 것"이 지금 취해야 할 가장 책임 있는 자세라고 강조해 트럼프 행정부가 표방한 '최대한의 압력'(maximum pressure)과는 차이를 보였다.
외신들은 폼페이오 장관이 원래 예정됐던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을 전격 취소하고 이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럽 동맹국 파트너를 만나러 갔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마주한 것은 이들 동맹국의 공개 비판이었다고 전했다.
WP는 "유럽 지도자들은 이란의 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이나 호전적인 행동이 문제라는 점에서는 미국에 동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로 인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외교 정책의 핵심 유산인 핵 합의가 폐기되어야 함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고 보도했다.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일제히 우려를 표명한 것은 최근 미국과 이란 사이의 갈등이 고조하면서 무력 충돌 가능성이 확대했다는 평가가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핵 합의와 제재 문제 등으로 이란과 대립하고 있는 미국은 최근 이란의 위협에 대응한다며 항공모함 전단, 전략폭격기, 탄도탄 요격미사일인 패트리엇 포대, 상륙함 등을 중동으로 파견했다.
이런 가운데 12일 호르무즈 해협에 접한 아랍에미리트(UAE) 동부 영해 인근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유조선을 포함한 상선 4척이 사보타주(의도적인 파괴행위) 공격을 받았고 미국은 이것이 이란의 소행이라고 의심하는 등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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