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모든 성직자, 성학대 사건 인지시 무조건 교회에 알려야"
잇단 성 학대 추문으로 위기 처한 가톨릭교회, 관련 법 전면 개편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세계 곳곳에서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 학대 사건과 은폐 의혹이 속속 드러나며 가톨릭 교회의 신뢰성이 큰 상처를 입은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문제에 좀 더 잘 대처하기 위한 새로운 원칙을 발표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일(현지시간) 교황 자의교서(a motu proprio)를 반포해 가톨릭 교회를 좀먹고 있는 성 추문 문제에 대한 단호한 대처 의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
교황은 이 자의교서에서 "과거의 쓰라린 교훈으로부터 배울 때"라며, 가톨릭 교회가 새로운 법령 아래 과거의 성 추문과 단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라틴어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뜻을 지닌 '보스 에스티스 룩스 문디'(Vos estis lux mundi)로 명명된 이 자의교서는 사제와 수녀 등 모든 성직자들이 교회 내 성 학대 추문과 상급자들에 의한 성 학대 추문의 은폐를 인지할 경우 교회 당국에 이를 즉각 보고하도록 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담고 있다.
또한, 아동 포르노물 소지·유포 등의 행위도 신고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나, 고해 성사를 통해 알게 된 의혹은 의무적 보고 대상에서 제외된다.
교황은 또한 이번 자의교서를 통해 전 세계 모든 교구들에 내년 6월까지 성직자들이 아동이나 성인, 같은 종교인을 상대로 저지른 성적 학대를 손쉽게 보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명령했다. 이 같은 조처는 내부 고발자를 좀 더 잘 보호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마르크 웰레 교황청 주교성 장관(추기경)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도 신고 대상에 포함된 것은 수녀와 신학생들을 상대로 교회 고위 사제들이 저지른 성 학대와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최근 수녀들이 신부들에 의해 성적으로 착취를 당해왔다는 폭로가 이어지며 논란이 인 바 있다.
교황의 자의교서는 아울러 각 교구들이 성 학대 사건에 대한 조사를 할 때 가급적 평신도 전문가들을 참여시킬 것도 권고했다.
이밖에 사제들이 저지른 성 학대 의혹을 현지 사법 당국에 신고하는 문제는 현지 법을 따르도록 규정했다.
이 같은 조항은 교회가 성 학대 가해자들과 성 학대 의혹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피해자 단체의 요구에는 못 미치는 것이다.
교황청 공보실 관계자는 "과거에는 성 학대 신고가 신부들이나 수녀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교회법으로 (신고가)의무화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성직자들이 성 학대 행위를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처벌이 뒤따르지는 않는 까닭에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될 전망이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들이 과거 아동을 상대로 저지른 성 학대 문제가 미국을 비롯해 칠레, 호주, 독일 등 서구 사회 곳곳에서 속속 드러나며 가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지난 2월 하순 교황청으로 각국 천주교 최고 의결 기구인 주교회의 의장들을 소집해 미성년자 보호를 위한 회의를 열고, 이 문제의 근절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