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선박 불 꺼주면 선주에게 진압 비용 받을 수 있을까?
인천소방본부, 2억8천만원 청구 vs 선주측 "법적 근거 없다"
(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인천소방본부와 외국 선박의 선주가 화재 진압 비용 부담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작년 5월 21일 발생한 파나마 국적 자동차 운반선 오토배너호(5만2천t급) 화재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항 개항 이래 최악의 화재로 기록된 이 화재는 배에 선적된 중고차 1천588대가 불에 타면서 밀폐형 구조의 선박 내부를 거대한 화덕처럼 달군 탓에 진화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결국 67시간의 사투 끝에 진화에 성공하고, 차량 수출업체는 불에 타지 않은 중고차 886대를 배에서 꺼내 중동으로 수출했다.
오토배너호도 작년 12월 30일 예인선에 끌려 인천항을 떠나, 해체 장소인 방글라데시 치타공으로 향하면서 이번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화재 진압과 관련한 비용 부담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인천소방본부는 올해 1월 말 선주 측에 화재 진압 당시 사용된 인건비·수리비·유류비·치료비 등 행정 비용 2억8천만원을 청구했다.
소방당국이 해외 국적 선박에 행정 비용 보상을 청구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소방당국은 지금까지는 외국 국적 선박의 화재 사건 때 해난구조 국제조약과 인도주의를 고려해 비용 청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는 워낙 많은 인력과 장비가 투입된 데다 선주 측에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법률 근거도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선주 측에 비용 부담을 주문했다.
인천소방본부는 선박과 화물로 인해 환경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을 때 구조작업에 종사한 구조자가 구조 소요 비용을 특별보상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상법 885조 등을 법률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선주 측 변호인은 그러나 행정 비용을 보상 청구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없다며 인천소방본부의 요구를 거부했다.
변호인은 화재 당시 오토배너호가 부두에 정박해 있었기 때문에 소방 대상물로 간주할 수 있다며, 이는 소방의 의무 범위 안에 있어서 선주 측이 보상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화재 진압 당시 선체 내 열기와 연기를 빼내기 위해 선박 측면에 가로·세로 1m 크기의 구멍 11개를 뚫는 데 사용된 용역비 919만원에 대해서는 재검토 협의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인천소방본부는 인천시 법률담당관실 자문변호사들의 조언을 받아 대응 방향을 정할 방침이지만, 선주 측에 화재 진압 비용을 청구한 전례가 없어 선주 측과 협의에 상당한 진통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해양경찰도 해양오염 방제 비용으로 선주 측에 1억9천만원을 청구해 놓은 상태다. 선주 측은 역시 1차 보상 청구에 거부 의사를 밝히고 이달 중 해경과 2차 협의를 가질 예정이다.
소방당국과 달리 해경은 해양환경관리법에 근거해 해양오염 행위자에게 방제 비용을 부과하고 실제로 수령한 사례가 적지 않다.
해경 관계자는 2일 "화재 등으로 인한 해양오염 사건 때 민간 전문위원들이 참여하는 심의위원회에서 오염 항목별로 방제 비용을 꼼꼼하게 산출한다"며 "바다에서는 행위자 부담 원칙에 따라 오염 행위자에게 방제 비용을 청구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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