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 고민 담은 프랑스식 유머…영화 '논-픽션'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첫 장면부터 편집장과 작가인 두 남자가 사무실에서 종이책과 e북에 관한 심오한 대화를 나눈다. 이들은 이내 식당으로 옮겨 대화를 이어간다.
요즘 사람들이 어떤 글을 좋아하고 읽는지부터 시작한 이들의 대화는 EU 정책에 대한 토론까지 나아간다. 길고 긴 대화 끝에 작가는 자신이 줄곧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이번에 내가 쓴 책 출판해줄 거야?"
편집장은 퇴근한 뒤에도 아내 그리고 저녁 식사를 위해 집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비슷한 대화를 계속한다. 모두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한다. 자신의 블로그 조회 수가 많다고 자랑하고, "읽는 사람은 없고 쓰는 사람은 많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퍼스널 쇼퍼'(2016)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새 영화 '논-픽션'은 전자화라는 상황 변화에 놓인 출판계를 배경으로 파리 사람들의 삶과 관계를 그린다. 대사가 영화를 가득 채운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거의 모든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은 대화를 나눈다.
아사야스 감독은 "우리가 사는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디지털화는 일어나고 있다. '논-픽션'은 그러한 변화에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영화"라며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물살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다"라고 밝혔다.
출판계에 닥친 변화라는 주제가 비교적 심오할 수 있지만, 영화는 지나치게 무거워지지 않는다. 각 인물은 모두 얽히고설킨 관계로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스타 배우인 아내 셀레나(쥘리에트 비노슈)가 있는 편집장 알랭(기욤 카네 분)은 회사의 젊은 디지털 마케터 로르(크리스타 테렛)와 불륜 관계다. 셀레나는 작가 레오나르(빈센트 맥케인)와 연인 사이다. 레오나르의 아내인 발레리(노라 함자위)는 남편의 불륜을 눈치챘다.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가볍지 않으나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고 언제나 '쿨'하다. 그리고 이들의 대사는 위트를 잃지 않는다.
영화의 처음 제목은 'e-북'이었으나 '논-픽션'으로 바뀌었다. 제목이 바뀌면서 영화에서 다루는 또 다른 주제도 포괄하게 됐다.
레오나르는 항상 자신의 연애사를 바탕으로 자전적인 소설을 쓰는데, 이것이 항상 논란이 된다. 자신뿐 아니라 과거 연인의 사생활을 공개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서점에서 진행되는 소설가와의 대화에서 독자들은 이에 대해 직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자유로운 비판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부러워지는 지점이다.
오는 5월 16일 개봉. 15세 관람가.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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