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고문피해자들 후유증 여전…치유·진상조사 절실"
고문피해자 건강검진 사업 하는 김근태기념치유센터 박은성 사무국장
"고문피해자 실태조사·지원책 미비…가해자도 밝혀내야"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민주화 운동이 이뤄낸 성과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로부터 고문을 받고 지금까지도 후유증에 고통을 겪는 피해자들은 상대적으로 정부와 국민의 관심에서 소외돼 왔습니다."
군사정권 시기 고문 피해자들에 대한 건강검진 사업을 담당하는 박은성 김근태기념치유센터 사무국장은 28일 연합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군사정권 시절 고문 피해자들의 실상에 대한 더 큰 관심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사무국장이 활동하는 김근태기념치유센터는 2013년 인권의학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던 함세웅 신부 주도로 세워졌다.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11년 별세한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기려, 국가폭력으로 상해와 트라우마를 겪는 고문 피해자들을 치유할 민간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건강검진이 이뤄지는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만난 박 사무국장은 "고문 피해자들이 일반 병원에 가면 자신의 피해를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울뿐더러, 설령 이야기하더라도 제대로 된 배려나 치료를 받기 어렵다"면서 인권 감수성을 지닌 주치의의 체계적 진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치유센터를 통해 녹색병원에서 정기검진과 비정기 진료를 받은 고문 피해자는 20여명이다. 올해에도 15명가량이 정기 건강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장남으로 역시 고문 피해자였던 김홍일 전 민주당 의원이 최근 별세하는 등 과거 국가가 자행한 고문 피해 문제는 지속적으로 회자하고 있다. 그러나 박 사무국장은 고문 피해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여전히 부족하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는 "고문 피해자들은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식의 2차 가해를 겪어왔다"며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도 '간첩을 옹호한다'는 인식이 생길까 봐 의도적으로 피해자들을 멀리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간 국가 차원에서 고문 피해자를 파악하고 치유를 도우러는 시도가 없지는 않았다.
고 김근태 의장 부인인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고문방지 및 고문피해자 구제·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법안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고, 20대 국회 들어서도 상임위에 계류된 채 논의에 진척이 없는 상태다.
고문 피해자 전반에 대한 진상조사도 2005∼2010년 활동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 결과와 2011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의학연구소에 연구용역을 맡겨 펴낸 '고문 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정도가 있을 뿐이다.
진실화해위가 접수한 중대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 의혹 사건의 진실규명 신청 건수는 총 768건이다. 이 가운데 134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이 내려졌고, 73건에는 재심이 권고됐다.
박 사무국장은 "진실화해위가 5년간 활동했지만 실제 진실규명 신청을 받은 기간은 1년이었다"며 "초반에 의구심으로 신청하지 않은 피해자가 많았고, 지금 이들이 다시 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추가적인 진상규명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아울러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숨죽이며 살아가는 피해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박 사무국장은 덧붙였다.
고문을 직접 자행한 가해자들을 밝혀내는 과정도 피해자 치유만큼 중요하다고 박 사무국장은 강조했다. 그는 "지금 와서 사법적 책임까지 묻긴 어렵겠지만, 가해자들이 누구였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인권의학연구소는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간첩 조작 사건에 가담해 훈장·포상을 받았다가 취소된 공무원들의 명단과 구체적 사유 등을 공개하라고 청구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해당 재판은 현재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박 사무국장은 "마지막 실태조사가 이뤄진 2011년 이후 무죄판결이나 손해배상을 받은 고문 피해자가 많다"며 "올해부터 자체 실태조사를 거쳐 이들의 재활과 회복에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관련 제도 보완과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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