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in제주] 예멘인 출도제한 1년…낯선 땅 적응은 현재 진행 중
인도적 체류허가자 75%, 일자리·이슬람 커뮤니티 찾아 육지로 이동
난민 신청자 체류 지원·관리 시스템 부실 등 난민 포용 과제 산적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2018년 한 해, 예멘 난민수용 문제는 청와대까지 나서 현황 파악을 지시할 정도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지난해 초 내전을 겪은 예멘인들이 대거 제주로 입도해 난민신청을 하자 난민수용 여부를 놓고 찬성과 반대 측으로 갈려 큰 논란이 벌어졌다.
특히 법무부가 작년 4월 30일 난민 인정심사와 체류 대책이 미비한 가운데 이들 예멘인이 제주 외 다른 지역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출도제한' 조처를 내리며 혼란이 가중됐다.
예멘인이 제주 섬에 묶이게 되자 이들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됐고, 사회적 긴장감도 커졌다.
예멘인 출도제한 조처 1년이 흐른 지금, 예멘 난민수용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 예멘에서 말레이시아, 그리고 제주까지
예멘은 사우디아라비아 반도 남쪽 끝에 있는 국가로 2015년부터 4년 넘게 후티 반군과 정부군 간 내전이 이어지고 있다.
내전을 피해 고향을 떠난 예멘인들은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 가능한 말레이시아로 탈출했다가 체류 기한이 지나자 무사증(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로 대거 입도했다.
예멘인들은 대부분 2017년 말 신설된 제주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연결하는 직항 항공편을 이용해 입도했다.
그전까지 예멘인들이 제주를 찾은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18년 들어서 6개월 만에 549명이 난민신청을 했다.
예멘인들이 대거 제주에 입도, 난민 신청자가 급증하자 법무부는 지난해 4월 30일 이들이 제주 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하는 출도제한조치를 내렸다.
현행 난민법에 따라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으면 국내에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지만, 관리 등의 이유로 활동범위를 제한하는 출도제한 조처를 내린 것이다.
정부가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몰려든 예멘인 500여 명을 제주도에 수용하기로 결정하면서 도민 사이에서 우려와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에 법무부는 같은 해 6월 1일을 기해 예멘을 무사증 입국허가 국가에서 제외하고 더이상 비자가 없는 예멘인을 제주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제주에 온 예멘인 중 일부는 출도제한이 내려지기 전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고, 제주에 남은 이들은 출도제한에 묶여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한 채 제주에 머물며 난민신청을 했다.
출도제한 조처가 내려지자 이슬람 공동체가 형성된 국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도움을 받으려던 예멘인들은 기본 예절부터 식습관까지 너무나도 다른 제주 생활에 적응해야했다.
또 갑자기 수백 명의 예멘인들이 제주에서 발이 묶이자 제주는 물론 국내적으로 사회적 긴장이 유발되기도 했다.
각종 가짜 뉴스와 찬·반 갈등 속에서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6개월에 걸친 난민 심사를 벌여 세 차례에 걸쳐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심사 결과 지난해 난민신청을 한 예멘인 총 481명(신청 포기자 3명) 중 단 2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모두 언론인 출신으로 향후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외 나머지 412명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고, 56명은 단순 불인정 됐다. 신청 포기자 등 14명은 직권 종료됐다.
◇ 예멘인 출도제한 1년…, 그들은
인도적 체류 허가가 인정되면서 예멘인들은 제주보다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더 많고, 외국인 커뮤니티 등 인프라가 갖춰진 곳을 찾아 전국 각지로 흩어졌다.
제주출입국청에 따르면 난민 인정자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414명 중 75%(314명)가 제주를 떠났다.
이들 대부분이 중소 규모 공장이 많은 인천·경기, 대기업 조선소가 있는 부산·울산 등에 거주하며 취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라남도의 한 조선소의 경우 지난해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은 예멘인 100여 명이 한꺼번에 취업한 사례도 있었다.
제주에 거주하는 예멘인은 주로 어선업, 양식업, 요식업 등 내국인 일자리 수요가 적은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이들에게 낯선 땅에서의 적응은 또 다른 문제다.
물론 그사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 예멘인은 한국 국적을 가진 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예멘인을 비롯한 이웃 주민과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주에 녹아들고 있지만 일부는 그렇지 못하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메카트로닉스를 공부하던 A(21)씨는 지난해 4월 홀로 제주에 입국, 난민신청을 해 같은 해 10월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았다.
다행히 영어가 능숙해 의사소통을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언어 장벽은 커져만 갔다.
A씨는 "한국어 교실에 나가 공부한 지 반년이 넘었지만 쉽게 늘지 않아 고민이 크다"며 "또 예멘 학력이나 전공을 인정받기 어렵고, 생계를 위해 생전 해보지 않은 일에 당장 뛰어들어야 해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열악한 근무환경 등의 이유로 몇 차례 일자리를 옮겼다.
특히 예멘과 다른 국가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이제 갓 성인이 된 그에게 벅차게만 다가왔다.
◇ 예멘인 난민수용 문제, 무엇을 남겼나.
예멘인 난민수용 문제는 난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열악한 난민 대응 정책과 심사절차 등을 돌아보는 기회가 됐다.
예멘인들이 대거 제주에 입국해 난민신청을 하면서 난민수용 여부를 두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이 팽팽하게 설전을 벌였다.
찬성 측에서는 난민법상 허용 기준이 맞다면 인도적 차원에서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 측에서는 불법 취업을 노린 '가짜 난민'을 구분할 수 없을 뿐더러 범죄와 테러의 위험도 크다고 맞섰다.
찬·반 갈등을 틈타 가짜뉴스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급기야 예멘인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7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도 도민과 시민·종교 단체의 온정의 손길은 이어졌다. 예멘인들은 심사 기간 가지고 온 여비를 다 써버리고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까지 처했지만, 도민 사회의 도움으로 숙식과 한국어 교육 등을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정부의 난민 지원 대책의 문제점도 속속 발견됐다.
법무부가 예멘인 출도제한을 했지만, 정작 인도적 지원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조와 업무 분담에 대한 근거가 없어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예멘을 비롯한 다른 국가 난민 신청자의 체류를 지원하고 관리할 시스템도 부실했다.
정부가 예멘 난민을 위해 내놓은 지원책은 사실상 일자리 알선뿐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지난해 6월 380명이 넘던 예멘인 취업자는 한 달여 만에 230명 이하로 줄었다.
1차산업 분야 일에 서툴고 한국과 문화가 달라 사업장에서 잦은 마찰이 생겼다.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종교, 열악한 노동환경을 이유로 스스로 일을 그만두거나 해고되는 상황도 생겼다.
난민 심사가 반년 이상 소요되면서 도민 불안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예멘인 대상 심사에 기존 난민 심사관 3명 중 2명을 투입하다가 심사관 4명을 추가 배치해 총 6명으로 증원, 예멘인 난민 심사 기간을 2개월여 단축했지만, 앞으로도 난민신청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어 지속적인 심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부는 또 난민심판원을 신설해 이의 제기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기로 했지만, 지난 3월 발표한 난민법 개정안에는 포함 시키지 않았다. 이의신청 기간 예멘인이 제주에 체류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이질적인 문화 상충 문제도 고민거리다.
지난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거나 난민이 불허된 예멘인 중 일부가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했고 이들의 이의신청절차가 모두 마무리될 때까지 최장 2년여가 걸린다.
dragon.m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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