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잘생기고 성격좋은, 119 에이스 구조견 케빈입니다"
수색 나서면 소방관 50명 몫 거뜬…최고인명구조견 '탑독'의 삶
(대구=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안녕, 나는 케빈이라고 해. 2010년 4월에 태어나 곧 만 아홉살이 되는 벨기에 말리노이즈 종 수컷이지. 혹시 인명 구조견이라고 들어봤니? 그게 내 직업이야.
중앙119구조본부로 발령받아 일을 시작한 게 두살 때인 2012년이니 벌써 올해로 8년차가 됐구나. 전국 소방기관에서 활약하는 인명 구조견 28마리 중에 최고참급이니 세월 참 빠르다.
이런 말 쑥스럽지만 난 신입 시절부터 실력 좋기로 전국에 소문이 난 에이스 구조견이야.
2년차 구조견이던 2013년에 충북 충주 야산에서 3일째 연락이 끊겼던 실종자를 투입 1시간 40분 만에 찾아냈어. 그때 기사도 꽤 나왔지.
해외도 여러 번 나갔어. 2013년에는 필리핀 타클로반 태풍 피해지역에 파견돼 잔햇더미에 묻힌 사망자 13명을 찾아냈고 2015년에는 네팔 지진 현장에 후속 지원대로 파견돼 여러 명의 시신을 발견했지.
상도 많이 받았어. 일을 막 시작한 2012년에 전국 인명 구조견 경진대회에 나갔다가 종합전술 부문 1위를 하는 바람에 일찍부터 유명해졌지. 2017년하고 올해 대회에서는 종합우승을 차지해 최고의 인명 구조견에게 주어지는 대상인 '탑독'(Top Dog)도 두 번이나 받았네.
대회는 여섯 가지 장애물을 연속 통과하는 종합전술, 야산에서 실종자를 찾아내는 수색훈련 등 2가지 종목 점수에 작년 현장 구조 실적을 더해 순위를 가리는데 나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두루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김홍필 중앙119구조본부장님 이야기로는 내가 수색작전에 투입되면 소방관 50명 몫은 거뜬히 한대.
게다가 내가 외모도 좀 되거든. 시크하게 생겼는데 성격은 순한 게 매력이라나. 대회 끝나고 박람회장에 시연 나가면 아이돌 스타급 인기를 실감하곤 해.
능력의 비결? 일단 타고난 재능이 제일 크다고 봐. 양치기견 가문인 말리노이즈 출신들은 대대로 총명하지. 또 감각이 예민하고 민첩한 데다 사회성과 적응력도 뛰어나서 래브라도 리트리버나 독일 셰퍼드 집안 출신과 함께 구조견으로 많이 활약하고 있어.
구조견이 마냥 좋기만 한 건 절대 아니야. 솔직히 말하면 참 많이 힘들어.
훈련견으로 뽑히면 이르면 생후 6개월 때부터 매일 1∼2시간에서 길면 5시간까지 훈련을 받아. 그중에 30분씩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대기훈련도 있는데 천방지축 놀고만 싶던 강아지 시절엔 어찌나 힘들었는지 몰라.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하면 밥도 한 번에 양껏 못 먹게 돼. 고기나 치즈 같은 특식에 영양제도 챙겨 먹지만 언제 어디로 출동할지 모르니 조금씩 나눠 먹어야 최고의 몸 상태와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거든.
한번 출동하면 험한 산지나 건물 붕괴 현장을 4시간 이상 돌아다니며 수색 활동을 하다 보니 건물 잔해에 베이거나 뼈가 부러지는 등 다치는 일도 적지 않아. 작년에는 경남 산청소방서에서 일하던 '번개'가 폭염 속에 임무를 수행하다 열사병으로 숨진 안타까운 일도 있었어.
그래도 희미한 흔적을 집요하게 좇아 고생 끝에 실종자를 찾아냈을 때 성취감은 아무리 짖어도 표현 못 해.
2014년인가, 강원도 산길 도로에 차만 남긴 채 20일 넘게 사라졌던 사람을 세시간 반 만에 낭떠러지 아래서 발견한 적이 있어. 불행히도 이미 사망한 상태였지만 하마터면 영영 실종자로 남을 뻔한 사람을 유족과 만나도록 도왔다는 점에서 기억에 참 많이 남아.
내 '핸들러'(구조견운용자)인 박해영 소방위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지. 온갖 험지를 누비는 힘든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이분 덕이야.
이제는 말없이 눈빛만 봐도 통하는, 나한테는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최고 대장님이지.
아쉽지만 핸들러와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인명 구조견은 8년 정도 활동하면 은퇴해 일반 가정에서 여생을 보내게 돼.
핸들러와 헤어져 현장을 떠나는 건 아쉽지만 선배 구조견 얘기를 전해 듣기로는 은퇴 후 삶이 참 편하다니 기대가 되기도 해. 소방청에서 마당이 있는지, 개를 키운 경험 같은 걸 꼼꼼하게 심사해서 새 가족을 찾아주기 때문에 새로운 생활에 잘 적응한다고 하더라.
국내에 처음 구조견이 도입된 게 1998년이야. 민간기업에서 양성하던 시절 배출된 44마리와 2011년 소방청에서 구조견 센터를 만든 뒤 투입된 42마리를 합치면 작년까지 모두 86마리의 구조견이 현장에 배치됐어.
이들은 작년 말까지 총 4천920차례 현장에 출동해 167명의 생존자와 195명의 사망자를 찾아냈지.
나도 여기에 적지 않게 힘을 보탰으니 이제 좀 마음 놓고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아 참, 그전에 할 일이 있구나. 6월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인명 구조견 경진대회에 한국 대표로 나가야 해.
예전에도 한 번 출전했는데 그때는 입상을 못 했어. 아직 우리나라 구조견이 세계 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없는데 어쩌면 내 마지막 임무가 될 이번 대회에서는 꼭 시상대 위에 올라서고 싶어.
[※ 이 기사는 25일 대구국제소방안전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핸들러 박해영 소방위, 중앙119구조본부 인명구조견센터의 김무기 센터장, 이민균 훈련관 등의 설명을 토대로 인명 구조견 케빈을 의인화해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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