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4' 신드롬에 속내 복잡한 영화계
"태풍이 빨리 지나가길" vs "강력한 스크린 규제 필요"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빨리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모 영화수입사 대표의 말이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어벤져스4) 태풍이 극장가를 휩쓸면서 국내 영화계가 숨죽이고 있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어벤져스4'가 24일 개봉과 동시에 올린 극장 매출액은 약 97억원. 전체 매출액 100억원의 97%를 차지한다. 전날 총 120편의 영화가 상영됐지만, '어벤져스 4' 한편이 돈을 다 쓸어 담은 셈이다. 상영 점유율도 무려 80.8%에 달했다. 이런 흥행 속도라면 이번 주말을 지나 개봉 2주 차에 1천만명을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역대 개봉일 최다관객 기록! / 연합뉴스 (Yonhapnews)
◇ 극장들, '역풍 맞을라' 표정 관리
'어벤져스4' 신드롬을 지켜보는 국내 영화업계 속내는 복잡하다.
극장들은 모처럼 특수에 반색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웃을 수도 없다. 스크린 독점 역풍을 우려해서다. 극장별 상영현황을 보면 그런 고민이 어느 정도 읽힌다.
전날 CGV의 '어벤져스4' 상영점유율은 79.1%였다. 반면 롯데시네마는 84.8%, 메가박스는 85.9%, 씨네 Q는 88.1%에 달했다. 1등 극장 사업자인 CGV의 경우 일부러 80%를 넘지 않게 점유율을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극장 관계자는 "'어벤져스4'는 걸기만 하면 관객이 들어오지만, 손해를 감수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 스크린 독점 의견 분분…탄력은 아직
스크린 독점 문제도 수면 위로 다시 떠 올랐다. 정부와 정치권은 다양한 영화 상영과 관객의 문화향유권 차원에서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극장들은 관객 수요에 맞춰 스크린을 편성해야 한다며 반발한다.
영화계 인사는 "관객이 이토록 영화를 애타게 기다리는 광경을 본 것도 정말 오랜만"이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률 규제로 국민 니즈를 막는 것은 오히려 권리 침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어벤져스' 열풍은 단순한 영화 관람이 아니라 하나의 공통된 이벤트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요즘 관객은 예전처럼 취향에 따라 이 영화, 저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료를 사전에 조사해 완벽하게 만족을 얻을 수 영화 한 편을 골라보는 경향이 있다"면서 "넷플릭스 등에서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작품이 많아졌기 때문에 퀄러티가 높은 작품을 극장에서 찾는다"고 말했다.
극장에 걸리는 영화가 다양하다고 관객이 극장을 더 많이 찾지는 않는다는 것은 최근 사례로 입증됐다.
'어벤져스4' 개봉 전 극장가에는 '생일' '요로나의 저주' '미성년' '헬보이' '왓칭' '돈' '바이스' 등 다양한 장르 영화들이 골고루 걸렸다. 그러나 관객 확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생일'은 무려 3주 동안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켰지만, 총관객 수는 113만명으로 '어벤져스4' 하루 관객 수에도 못 미친다. 극장 좌석점유율은 3%대로 떨어졌고, 하루 전체 관객 수도 10만2천명에 불과했다.
정상진 엣나인필름 대표는 "스크린 상한제 도입이 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면서 "동일 영화를 일정 비율 이상 상영하지 못하게 하면 1등 영화의 상영 기간만 오히려 길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예컨대 '어벤져스4'의 상영 비율을 50%로 제한하면, 2~3주면 사그라들 열풍이 한 달 이상 지속해 다른 개봉 영화들이 오히려 묻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법률 규제 등으로 막을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독립영화관이나 시네마테크를 더 많이 만들어 독립·예술 영화를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반면,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장수 반독과점 영화인대책위원회 운영위원은 "어제 상영작이 120여편인데, '어벤져스4' 한편만 살고, 나머지 영화는 죽든 말든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냐"며 반문한 뒤 "강력한 스크린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역대 1천만 영화들의 개봉 당일 상영점유율을 보면 10%대 2편('변호인''겨울왕국'), 20%대 4편('7번방의 선물' '광해' '해운대' '아바타'), 30%대 5편( '국제시장''베테랑' '도둑들' '인터스텔라' '택시운전사') 등이다.
배 위원은 "'어벤져스4'처럼 80%씩 상영횟수를 몰아주지 않아도 1천만 영화들은 많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fusionj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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