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금장치 없는 숙소…성폭력 위험 노출된 외국인여성농부"
이주여성인권센터·한국여성변호사회 '폭력피해 이주여성 현주소' 심포지움
(서울=연합뉴스) 오수진 기자 = #1.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A씨는 사업주가 자정이 되어 불쑥 찾아와 방에서 나가지 않고 누워있자 나가달라고 했다. 사업주는 "왜 그러냐"며 말한 뒤 A씨를 끌어안고 원치 않는 신체 접촉을 했다. 방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싶었지만, 방문에는 잠금장치가 없었다.
#2. 이주여성 B씨는 농촌에서 일하면서 사업주에게 지속해서 추행을 당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추행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놓고 이를 신고하면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는 남자친구 C씨에게 보여주고 본국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다. B씨는 적법한 체류 자격이 있는 노동자였으나 사업주가 자신을 미등록 노동자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에 신고를 못 했다. 추행은 계속됐고 출장노동을 갔다 오던 트럭 안에서 사업주는 성행위까지 요구했다.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인해 성폭력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주민지원센터 '감사와 동행'(감동) 소속 고지운 변호사는 24일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동 주최로 열린 '유엔 권고로 돌아본 폭력피해 이주여성의 현주소와 개선방향' 심포지엄에서 발제를 통해 이주여성농촌노동자들의 성폭력 실태를 자세히 고발했다. 비전문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와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이다.
지난 2016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이주여성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농업 분야에 종사한 이주여성노동자 가운데 12.4%는 '한 번이라도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고 변호사는 "농축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비전문취업비자 여성 노동자, 예술흥행비자로 일하는 공연분야 여성 노동자는 숙소 자체가 안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특히 농촌 지역은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고 숙소에 잠금장치가 없거나 칸막이 없이 큰 대야를 간이욕실도 사용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이 외딴곳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를 본 경우 어디에 요청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제조업 등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거주하는 이주여성보다 상대적으로 사법접근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고 변호사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권고사항을 소개하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으로 ▲ 출입국관리법 성폭력피해자 특칙 규정의 실질적 보장 ▲ 가해자와 피해자의 즉시 분리 ▲ 숙소시설 전반적 개선 ▲ 사법접근권 개선 등을 요구했다.
고 변호사는 "미등록 체류 기간에 놓인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서는 범칙금으로 인해 신고를 꺼리지 않도록 범칙금 제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며 "통역 과정에서 오역이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 구제절차가 진행 초기부터 통역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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