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샛별 안재용 "미하엘 바리시니코프 '백야'가 인생 바꿨죠"
6월 12~14일 예술의전당서 '신데렐라' 공연…"발에 주목하세요"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발레는 중력의 힘을 거부하는 예술이다. 혹독한 신체훈련을 해야 하는 만큼, 어려서 입문할수록 유리하다고 알려졌다.
이런 통념을 깨부순 발레리노가 있다. 모나코 왕립 몬테카를로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안재용(26) 이야기다. 그가 발레를 처음 접한 건 뼈가 여물었던 17세 때다.
2016년 이 발레단에 입단한 안재용은 2017년 '세컨드 솔로이스트'로 승급하더니, 작년에는 수석무용수인 '솔로이스트 프린시펄'로 초고속 승급했다. 솔로이스트 프린시펄은 발레단의 최고 무용수인 '에투알' 바로 아래 단계다. 현재 몬테카를로발레단에 에투알이 없기 때문에 안재용은 현재 이 발레단에서 가장 높은 등급의 무용수다.
몬테카를로발레단의 내한공연 '신데렐라' 개최를 앞두고 이메일 인터뷰로 만난 안재용은 "발레리노가 된 건 누나 덕분"이라고 털어놨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누나가 언뜻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니 발레를 하면 어울리겠다'고 말했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제 꿈은 성형외과 의사였거든요. 그런데 누나가 영화 '백야' DVD를 제 방에 놓고 갔고, 몇 달 후 제 삶이 바뀌었어요. 영화 주인공인 발레리노 마하엘 바리시니코프의 첫 장면부터 완전히 마음을 뺏긴 거죠. 그날로 바로 발레를 시작했어요. 2학년 때 부산예고로 전학했고, 3학년 때 선화예고로 전학한 뒤 한예종에 입학했습니다."
누나가 그를 발레로 이끌었다면, 원석을 지금의 모습으로 다듬은 건 프랑스 출신의 거장 장크리스토프 마이요다. 몬테카를로는 1993년 마이요를 예술감독 겸 안무가로 초빙한 뒤 세계 정상급 컨템퍼러리 발레단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안재용은 "감사하게도 승급하기 이전부터 나의 예술세계를 펼칠 기회를 많이 주셨다. 마이요 선생님의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며 "이유는 잘 모르지만, 발레마스터가 내 리허설 태도가 아주 좋았다고 평가했다고 들었다. 한번 얘기하면 다음에 완전히 고쳐서 오고, 내 것으로 새롭게 만들어왔다고 한다. 그런 점이 어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마이요 감독님의 안무는 굉장히 사실적이면서도 상대방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같은 아라베스크를 하더라도 그냥 예쁘게 하는 것이 아닌, 대화 방식처럼 느껴진다"며 "특히 인물 간 감정묘사는 발레 무대가 아닌 영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안재용은 오는 6월 12~14일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마이요가 새롭게 해석한 '신데렐라'를 보여준다. '신데렐라'는 2005년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의 첫 내한공연 때 선보인 작품이다. 이 발레단의 내한은 14년 만이다.
이번 작품에선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이 탁월한 마이요의 장기가 잘 드러난다. 동화를 소재로 하면서도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해석이 특징이다. 주인공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벗어던지고 금빛 가루를 묻힌 맨발로 무대에서 춤춘다.
"'발'에 주목해주세요. 모든 건 발에서 다 이루어집니다. 동화에서는 유리구두가 이야기의 키 포인트인데, 몬테카를로 버전에서는 '맨발'이 핵심이에요. 신데렐라 발의 금가루가 유리구두를 대체하죠. 무도회 장면에서도 왕자들에게 여자들이 구혼을 요청하는데 왕자는 그녀들의 '발'만 봅니다. 재미있는 설정이에요."
발레 입문 10년이 채 안 돼 정상급 무용수로 우뚝 선 안재용. 세속적인 목표로 보일지언정, 에투알 승진 등도 꿈꾸냐고 물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며 "외적 인기는 여러 이유로 얻을 수 있지만,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건 진정한 실력과 인품을 갖춰야 가능한 것"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
또 "물론 지금 내가 시기와 질투에 둘러싸인 건 아니다"라며 답변 옆에는 눈웃음 모양의 이모티콘까지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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