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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공화주의가 시대정신…보수 가치 재구성해야"
'보수전략가' 박형준, '보수의 재구성' 출간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박근혜 정부 중반까지만 해도 '장기 집권론'을 공공연히 거론하며 자만한 보수우파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처참하고 무기력하게 붕괴한다. 재기가 한동안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말이 들리고 새 정부에선 '민주세력 20년 집권론' 얘기가 나온다.
이러한 보수우파 몰락 이유로 여러 원인을 들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로 이념 철학적 가치가 부재하고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 꼽힌다. '86세대'를 중심으로 한 진보좌파 진영이 대학 시절부터 철저한 사상교육으로 결집력을 과시하는 데 반해 보수우파를 한데 묶어줄 가치를 찾는 건 여전히 힘들다.
과거 미국과 영국 등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보수가 몰락했을 때 재기를 위해 가장 우선한 작업은 이념과 철학을 재정비하는 일이었다. 그들로선 다행히 배리 골드워터나 에드먼드 버크 같은 탁월한 이론가가 존재했다.
국내 보수우파 진영에서도 최근 이런 물결이 조금씩 감지된다. 17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 사무총장 등을 지낸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보수 가치 재정립에 나선 대표적 전략이론가 중 한 명이다. 종편 프로그램 '썰전' 덕에 젊은 세대에게도 친숙한 얼굴이다.
뉴라이트 운동으로 상징되는 '박세일 사단' 일원이기도 한 박 교수는 이명박 정부 중반기 '친서민 중도실용'이라는 국정 철학을 입안했다. '중도'라는 단어가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국정 운영 구호로 등장한 때였다. 좌우를 넘나드는 그의 중도 성향은 좌우 양쪽 모두에서 의심받는 약점이면서도 국민 통합 대의 앞에선 강점으로 평가받았다.
그런 박 교수가 권기돈 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장과 함께 쓴 '보수의 재구성'(메디치 펴냄)'은 한국 보수의 존재 이유를 묻고, 무엇을 반성하고 혁신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한 책이다. 보수 진영 판을 완전히 다시 설계할 전략을 담은 지침서다.
그가 새롭게 들고나온 보수의 갈 길은 '자유공화주의'다.
자유, 민주, 공화가 보수의 핵심 가치임을 자각하고 이를 미래지향적인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 앞에 제시할 때 보수 정파가 다시 국민의 지지를 얻고 국정 운영 세력으로 재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자유공화주의일까? 이는 당시 공산세력의 남하에 맞서 기적적으로 탄생한 대한민국 수립과 제헌 헌법의 의의를 계승하는 것이며, '개인의 자유' 세례를 받으며 태어나고 성장한 미래 주도 세대를 한데 모을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라고 책은 설명한다.
그러나 자유 또는 자유주의만이 절대선일 때 공동체는 또 한 번 분열과 반목의 위기에 놓일 수 있으므로, 사적 이해관계가 타인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을 막고 시민적 덕성을 중시하는 공화주의가 더불어 필요하다.
책은 "자유에 기초한 가치와 노선을 제대로 세우고 실천한다면 보수의 언어가 진보의 언어보다 더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책은 미국 헌법 제도를 근간으로 '위로부터의 자유주의 혁명'을 이뤄내 봉건사회를 혁파한 이승만, 선진화의 토대를 놓은 박정희의 정신을 비판·발전적으로 계승하되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선 정치 철학과 체제, 정파를 확립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자유공화사회'는 쉽게 말해 "굼벵이 구르는 재주도 기회를 갖는 사회"라고 한다.
성숙한 서구 민주주의 공동체에 존재하는 '시민종교'(civil religion) 같은 공동체적 신념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는 점도 지적한다.
일본이 메이지유신에서 시작해 중국과 러시아를 무릎 꿇리고 미국과도 맞섰으며, 경제 대국을 이룬 '대국화 신화'가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자유민주동맹에 힘입은 공산화 저지, '한강의 기적', '1987 민주화', 선진국 클럽 가입에 이르는 건국과 성공 신화를 말하던 때가 있었다. 이른바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기간 동시 달성한 유일한 나라'라는 신화였다. 그러나 이 신화는 건국 시점부터 다시 흔들리고 있다고 책은 지적한다. 또 시민종교 복원을 통해 시민 덕성을 고양하는 것이 보수 재구성의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자유공화주의 실현을 위해서는 시민적 덕성, 협력 능력, 창조성이라는 세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특히 시민 덕성 함양을 위해 보수 진영이 교육개혁에 진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승만의 치적 중 토지개혁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 바로 의무 교육을 도입한 '교육개혁'이었다는 점을 다시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무엇보다 사회적 약속인 법치를 확립하는 동시에, 건국 이후 국가 발전의 초석이었던 한미 동맹을 가치동맹으로 확고히 세워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밖에 보수 진영이 가부장적 권위주의와 결별하고 여성 차별 요소를 없애 가족 해체의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통일이 자유대한민국의 건국 이념을 훼손시키는 '연방제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되 흡수통일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서문에서 "자유공화주의는 단순히 보수 가치가 아니라 대한민국 가치로 확장될 수 있다"면서 "자유공화주의는 보편적 지평을 갖는 21세기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고 했다.
서구 사회에서 보수는 위기를 오히려 진영 확장의 기회로 삼았다. 이 책은 벤저민 디즈레일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 에이브러햄 링컨 등이 보수 이념 재정립을 통해 진영 논리를 넘어서는 업적을 세운 역사에서 교훈을 찾으려는 듯하다.


lesli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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