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지키자'…기아차 노조 "텔루라이드 미국 생산 중단하라"
자동차산업 고용위기 심화…車업계 단협 협상서 '고용안정' 핵심쟁점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 글로벌 경기 둔화와 전기차 확대 등에 따라 완성차업체들의 고용 위기가 심화하면서 노동조합들이 각종 고용안정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완성차업체들의 사측은 이런 요구를 대부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단체협약 협상에서 고용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기아자동차[000270] 노동조합이 지난 1일부터 시작한 정기 대의원대회의 안건 68개 가운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텔루라이드와 SP2 해외 생산 중단을 요구하는 안건이 포함됐다.
이들 안건의 제목은 '미국 조지아공장에서 생산 중인 텔루라이드 생산중단을 위한 투쟁배치 및 화성공장 생산 건'과 '2019년 기아차 유일한 신차인 SP2 인도공장 생산중단 요청 건'이다.
기아차 노조 관계자는 "국내 물량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일자리 지키기 차원에서 국내생산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들 안건이 대의원대회에서 원안대로 의결될지는 미지수이며 사측이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관측된다.
기아차 사측은 단체협약에 따라 전 노조 집행부에 텔루라이드를 북미 전용으로 개발·생산한다는 계획을 설명했기 때문에 단체협약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또한 텔루라이드는 북미 전략 차종으로 휘발유 모델만 개발한 상태로 화성공장의 모하비 생산 라인에서 혼류 생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노사는 텔루라이드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대신 국내에서는 모하비 부분변경 모델 개발에 노력하자는 수준에서 협의한 바 있다.
소형 SUV SP2 역시 국내에서는 7월부터, 인도서는 9월부터 병행 생산하기로 전 집행부 시절 노사 간 협의가 이뤄진 상황으로 인도 생산 중단 요구는 수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수입차 관세가 높아 국내 생산분을 인도로 수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노조도 알고 있기 때문에 국내 물량 확보라는 원론적 차원에서 요구하는 성격이 강하다.
기아차 관계자는 "노조는 예전에도 유럽 전략 모델인 씨드의 국내생산을 요구한 사례가 있었지만, 최근 글로벌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에 따라 노조가 해외 생산에 더욱 부정적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현대차[005380] 노조는 9일 발행한 지부소식지를 통해 "올해 단체교섭 승리와 고용안정에 만전을 다하겠다"며 고용안정에 우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현대차 노조는 금속노조, 기아차 노조와 공동으로 '미래자동차의 변화와 노동조합의 대응'이란 연구용역을 시행했으며 최근 연구 결과를 사업부 대의원들에게 설명했다.
노조는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2025년까지 현대차 국내생산 전기차가 45만대로 확대되면 내연기관과 변속기가 없어지면서 사라지는 일자리가 3천여개일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제조공정의 기술 변화로도 일자리가 2천여개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사측은 전기차 확대에 따른 일자리 감소 규모는 노조와 같은 3천여개로 분석했지만,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감소분은 노조의 2배인 4천여개로 추정했다.
현대차 노사는 감소 규모 추정에는 이견을 보였지만, 전기차와 공장 자동화 등에 따른 감원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아울러 노조는 2025년까지 1만7천500명이 정년퇴직하면 이런 감소 요인을 고려해 1만여명을 신규 고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사측이 추정한 7천여명 감소를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사측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겠지만, 정년퇴직에 따른 신규 고용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노조와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대차 노조는 최근 대의원대회에서 정년퇴직 발생으로 인한 감소 인원분을 사측이 촉탁직 채용으로 충원한 것에 대해 정규직으로 충원하기로 한 단체협약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투쟁을 결의했으며 4∼5월에 본격적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이밖에 노사가 '벼랑 끝 대치'를 벌이는 르노삼성자동차 임금·단체협약 협상에서도 노조의 고용안정 요구가 핵심 쟁점이다.
르노삼성 노조는 단체협약의 외주분사와 배치전환 규정을 노사 간 협의에서 합의로 바꾸자고 요구하고 있으며, 사측은 인사경영권 침해라며 맞서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2012년에 단체협약을 협의로 바꾼 이후 사측이 외주화를 위해 배치전환을 하기도 했다"며 "기본급을 동결하더라도 단체협상의 협의를 합의로 바꾸자는 것으로 이는 고용을 지키기 위한 요구"라고 말했다.
반면 사측 관계자는 "전환배치를 노사 합의로 정한 글로벌 업체는 없으며 생산 물량 등에 따라 외주화가 필요하다"며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르노삼성 노사가 대립각을 세운 1분기 수출량은 작년 동기 대비 50.2% 급감했다. 이는 닛산이 생산을 위탁한 SUV 로그 북미 수출이 47.2% 감소한 영향이 컸다.
노조는 로그 수출 감소는 파업 여파가 아닌 미국의 경기 둔화 때문이라며 자동차산업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고용 안정이 더욱 필요하다고 밝혔다.
닛산에 따르면 1분기 미국 내 로그 판매는 작년 동기 대비 19.4% 감소한 9만3천814대에 그쳤고 닛산의 전체 미국 판매량도 11.6% 감소했다.
자동차 전문 시장조사업체인 마크라인스가 집계한 1분기 미국의 전체 자동차 판매도 2.5% 감소하는 등 신차 판매가 정점을 지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독일 프라운호퍼 노동경제연구소는 지난해 독일 금속노조의 의뢰로 연구한 결과 2030년까지 독일에서 전기차 확대로 엔진과 변속기 생산 관련 일자리 3개 중 1개가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고 발표했다.
justdu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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