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상주본 소장자 항소심도 패소 "강제집행 가능"(종합2보)
소장 주장 배익기씨 "상고 미정…법률 전문가와 논의해 결정"
문화재청 "스스로 반환하도록 최대한 설득하되 강제집행도 검토"
(대구·서울=연합뉴스) 이강일 정아란 기자 = 훈민정음 상주본을 갖고 있다는 배익기(56·고서적 수입판매상)씨가 그 소유권 확보를 위한 문화재청 강제집행을 막으려고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항소심에서도 패소했다.
대구고법 민사2부(박연욱 부장판사)는 4일 배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청구이의의 소'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배씨 청구를 기각했다.
청구이의 소송은 기존 집행권원(이 소송에서는 국가)에 의한 강제집행을 허용하지 말라달라고 법원에 내는 소송이다.
배씨는 상주본의 법적 소유권자인 국가(문화재청)가 2017년 "상주본을 넘겨주지 않으면 반환소송과 함께 문화재 은닉에 관한 범죄로 고발하겠다"고 통보하자 국가를 상대로 '청구이의의 소'를 냈다.
그는 1심 재판에서 "상주본 절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는데도 내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을 맡은 대구지법 상주지원 민사합의부는 "무죄판결은 증거가 없다는 의미일 뿐 공소사실 부존재가 증명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배씨 청구를 기각했다.
또 "원고는 국가 소유권을 인정한 민사판결 이전에 상주본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지만, 청구이의의 소는 판결 이후에 생긴 것만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은 배씨가 판결 결과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배씨는 판결 직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상고 여부는 아직 모르겠다"라면서 "법률을 잘 아는 전문가와 논의해 대응 방향을 결정하겠다"라고 밝혔다.
배씨가 1, 2심에서 내리 패소하면서 문화재청이 상주본 회수를 위한 강제집행에 나설 가능성이 한층 더 커졌다.
문화재청은 상주본 소재를 유일하게 아는 소장자가 스스로 반환하도록 설득하되, 상황에 따라 강제집행 가능성도 열어놓겠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상주본 소유권자가 국가이며 강제집행이 가능함을 재차 확인한 판결"이라면서 "배씨를 계속 설득하겠지만, 공권력으로 강제집행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소송과 별도로 배씨는 최근 서울에 있는 법무법인을 통해 상주본 소유권을 판단한 민사재판과 자신이 절도 혐의로 재판받을 때 증인으로 나온 3명을 검찰에 고소했다.
그는 당시 증인들이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해 당시 재판부가 상주본의 소유권을 조용훈(2012년 사망)씨에게 있다고 판단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례본 상주본은 2008년 7월 배씨 집을 수리하던 중 국보 70호인 해례본(간송미술관본)과 같은 판본을 발견했다고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예의(例義), 해례(解例), 정인지 서문 가운데 일부가 없어졌지만 상태가 양호했고 간송본에는 없는 표기와 소리 등에 관한 연구자 주석이 있어 학술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상주본이 1조원 가치가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leek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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