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49주기…"한국인보다 한국 더 사랑"
오세정 서울대 총장·정운찬 전 총리 등 100여명 참석
(서울=연합뉴스) 김철선 기자 =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리고 독립 후에는 서울대 수의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한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 박사의 49주기 기념식이 4일 열렸다.
서울대 주최로 수의대 스코필드홀에서 진행된 기념식에는 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와 오세정 서울대 총장, 이용기 국가보훈처 서울남부보훈지청장, 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스코필드 박사의 기일은 4월 12일이지만,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행사 등 일정으로 추모 행사를 한 주 앞당겼다고 서울대는 설명했다.
오세정 총장은 기념사에서 "스코필드 박사는 100년 전 3·1운동 당시 시위현장과 제암리 학살 현장을 기록해 일제의 압제를 폭로, 고발했다"며 "해방 이후에는 서울대 수의대에서 외래교수로 재직하며 한국인들을 도왔다"고 말했다.
오 총장은 "외국인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남의 나라 독립을 위해 일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면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박사의 사랑과 헌신에 거듭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정운찬 전 총리는 "스코필드 박사께서 내주신 학비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녔다"며 "박사는 위대한 독립운동가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은인"이라고 전했다.
정 전 총리는 "한국의 소득분배 악화를 걱정한 스코필드 박사는 제게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경제학 공부를 권유했다"며 "박사의 뜻에 따라 학업을 마치고, 10년 전부터는 사회에서 동반성장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기념식에 이어 이준식 독립기념관장이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1889년 영국 워릭셔주에서 태어난 스코필드 박사는 1907년 캐나다에 이민을 가 1911년 토론토대에서 수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6년부터 4년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과 위생학을 가르쳤다. 석호필이라는 한국 이름도 이때 지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3·1 운동을 지원·기록하고 일제의 비인도적 만행을 규탄하는 활동을 벌이다 일제에 의해 반강제로 한국을 떠난 박사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한국 상황을 알리는 운동을 전개했다.
1958년 정부 초청으로 다시 한국을 찾은 스코필드 박사는 서울대 수의과학대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1959년 대한민국으로 영구귀국했다. 1960년 대한민국 문화훈장과 1968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국민장을 받았다.
스코필드 박사는 1970년 4월 12일 서거했다. 유언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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