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액티브] '네가'라는 말이 비하 표현으로 오해될 때
흑인 남자친구와 일상 그린 '예롱쓰의 낙서만화' 작가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곽효원 인턴기자 = 가나에서 온 만니씨는 2015년 친구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가 자신들이 탕에 들어가자 탕 안에 있던 이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는 경험을 했다. 탕에서 나간 뒤에도 만니씨를 쳐다보던 이들. '예롱쓰의 낙서만화'의 한 대목이다.
SNS에 연재 중인 '예롱쓰의 낙서만화'는 작가 예롱(필명)씨와 그의 흑인 남자친구 만니씨가 한국 사회에서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예롱씨를 만나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이라는 민낯에 대해 들어보았다.
다음은 예롱씨와의 일문일답.
-- 흑인 인권과 인종차별에 대한 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 SNS에서 짧은 만화를 그렸는데 반응이 재밌었어요. 그래서 흑인 남자친구와의 일상을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하면 인종차별은 일상이 되거든요. 사소한 일상에서도 차별적인 시선을 느낄 때가 많아요.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다가와서 남자친구의 피부나 머리카락을 만지기도 하고, 길에서 마주치면 놀란 표정으로 '헉'하고 큰 소리를 내기도 해요. 저한테는 "저 여자는 이제 한국 남자한테는 못돌아오겠네"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요.
인종차별 받는 일상을 만화로 그렸는데 예상치 못하게 조회 수가 올라갔어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특히 흑인들이 공감하면서 댓글과 메시지를 남겨줬어요. 그 목소리들에 힘입어서 본격적으로 인종차별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 에피소드 선정 기준은.
▲ 제가 배워나가는 과정들,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그리려고 해요. 정확하지 않거나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에피소드는 제외하죠.
'니가'라는 표현에 대해 다룬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네가'를 '내가'와 발음이 비슷하니 '니가'라고 발음하면서 구분하잖아요. 그런데 외국인들은 한국의 '니가'라는 표현에 의문을 갖더라고요. '니가'를 흑인을 모욕하는 영어의 속어(니거·n*gger)라고 오해하고, '한국에서는 어떻게 혐오표현이 빈번하게 쓰이지'라고 의아해하는 거죠. 오해를 풀어보자는 생각에 그린 에피소드였는데, 외국인들이 모르는 사실이었다며 많이 놀라더라고요.
어떤 외국인이 저에게 방탄소년단 노래에서 나오는 '니가'라는 가사가 흑인 비하 표현 아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이 에피소드를 보여줬더니 그제야 한국어에 대한 오해였다는 걸 이해했어요. 제 만화가 이렇게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해요.
-- 최근에 다룬 에피소드가 있다면.
▲ 남자친구와 카페에 갔는데 케이팝 음악이 나오다가 갑자기 '마이클 잭슨' 노래가 나왔어요. 그러자 남자친구 만니가 "내가 카페에 가면 케이팝이 나오다가도 재즈나 외국 팝송, 외국 힙합으로 노래가 바뀌어. 혹시 나 때문에 노래를 바꾸는 건 아니겠지?"라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만니가 조금 예민하거나 민감하다고 느꼈는데, 생각해보니까 노래 한 곡에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전의 경험이 있더라고요. 저는 생각도 못하고 넘길 수 있는 사안이 누군가에게는 차별로 다가갈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 에피소드를 그리면서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차별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사회적 배경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만화를 그리는 목표는.
▲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지나서 만화를 다시 봤을 때, '어? 그때는 이걸 이렇게 표현했네'하고 저 자신도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발견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 나중에라도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게 제가 성장한 증거라고 보거든요. 좀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제 만화가 변화의 계기가 됐으면 해요. 흑인을 보고 빤히 쳐다보다가도 내 만화가 떠올라서 눈길을 거두게 된다면 변화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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