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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길을 묻다] "매출액 1억짜리 벤처에 10억 투자한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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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길을 묻다] "매출액 1억짜리 벤처에 10억 투자한 은행"
'대출에서 투자로'…금융사 벤처기업 지원 패러다임 바꾼다
성장성 보고 직접투자…사무공간 내주며 육성 나서는 은행도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구정모 기자 = 에이젠글로벌은 지난해 우리은행의 혁신성장 기업 투자 공모에 지원했을 때만 해도 매출액이 1억원 남짓한 작은 기업이었다.
2016년에 설립돼 인공지능(AI)에 기반한 핀테크 분야에서 막 입지를 쌓아가고 있었다. 기술력을 매출로 실현하는 본궤도에는 오르지 못한 단계였다.
우리은행은 이 신생 기업에 10억원 투자 결정을 내린다. 한 푼을 대출하더라도 담보물이나 보증서를 꼼꼼히 따지는 은행의 보수성에 비춰 보기 드문 행보다. 투자 손실이 나면 은행이 100% 떠안아야 하는 구조여서다.
벤처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대출에서 투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바뀌는 최근 추세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만하다.
은행들이 기업의 재무제표만 보지 않고 기술력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2014년 '기술금융'을 강조하면서부터다.
기술금융은 기업이 보유한 기술의 가치나 특허권 등을 평가해 자금을 공급해주는 금융을 말한다.
물적 담보나 재무능력을 평가하는 기존 방식보다 '진보적'이긴 했지만, 투자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출이 주를 이뤘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기술금융 대출 규모가 99조4천억원인 반면 투자는 2조4천억원에 그쳤다.
새 정부 들어 국정 기조가 혁신성장으로 바뀌는 것에 발맞춰 은행들이 투자 쪽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투자은행(IB)그룹 내 혁신성장금융팀을 신설해 소액 직접투자에 나섰다.
지난해 3∼4분기 공모를 진행, 19개 기업에 180억원을 투자했다. 핀테크, AI, 사물인터넷, 장애인용 스마트기기, 바이오, 헬스 등 투자기업의 분야도 다양하다.
투자 대상 기업을 선정할 때 '숫자'를 덜 보고 기술력과 성장성을 살폈다. 대표이사의 자질과 이력, 업계에서의 평가 등도 주요 고려 요소였다. 에이젠글로벌에 대한 투자 결정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다.
우리은행은 올해 들어 판을 더 키웠다.
3년간 3조원 규모의 혁신성장펀드를 조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3천억원으로 모(母)펀드를 만들고 하위펀드 선정과 모집으로 매년 1조원 규모로 펀드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은행이 직접투자에 나서자 부수적인 효과도 생겨났다. 우리은행 이름이 주주명부에 올라가게 되면서 일종의 긍정적인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주주로 들어가면서 인지도가 없던 스타트업이 공신력을 얻게 되고 후속 투자 유치에도 신뢰성을 얻게 됐다"면서 "자금 지원뿐 아니라 정성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이 된 셈"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과 궤를 달리한 금융지원도 있다.
처음부터 투자 대상 기업과 금융기관의 혁신을 같이 추구하는 방식이다. 신한금융그룹의 '신한퓨처스랩'이 그 예다.
신한퓨처스랩은 선정 기업에 사무공간을 내주고, 멘토링도 한다. 그룹 내 자회사가 멘토 회사로 지정돼 금융 분야에서 조언을 해주고 외부 벤처캐피털이나 선배 기업도 연결해준다.
직접 지분투자도 한다. 현재까지 24개사에 83억원을 투자했다.



협업을 목적으로 했기에 투자기업과 신한금융그룹간 추진하기로 한 협업사업이 43건에 달한다. 신한은행의 '시선추적 기술을 적용한 자동화기기(ATM)'도 이런 협업사례다.
신한퓨처스랩 4기 기업인 비주얼캠프와 함께 눈동자의 움직임만으로 ATM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도 ATM을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신한퓨처스랩을 거쳐 제법 성장한 기업도 적지 않다. 가상화폐거래소 고팍스를 운영하는 스트리미, P2P(개인간)금융업체인 어니스트펀드가 신한퓨처스랩 출신이다.
신한금융도 올해 혁신성장기업에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4년간 1조7천억원을 투자하는 혁신성장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신한퓨처스랩을 강화할 뿐 아니라 별도로 개별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곳이 스타트업이고, 금융기관이 내부혁신을 꾀하기 위해서는 스타트업이 필요해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고 협업하는 방식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KB금융[105560]은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투자하는 'KB 이노베이션 허브'를 운영하고, KEB하나은행도 설립 7년 이내 스타트업에 직접투자를 하고 있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024110]은 'IBK 창공(創工)'을 통해 창업기업 지원에 주력하고 있다.
창공은 '창업 공장'의 줄임말이다. 은행 소유 유휴 부동산에 혁신기술을 지닌 창업기업을 5개월간 입주시키고 투·융자, 교육·상담, 판로 확보, 마케팅 등을 지원해 기업을 육성한다.
서울 마포(2017년 12월)·구로(2018년 10월)에 이어 올해 상반기 중 부산에 3번째 센터를 연다.



'창공 프로젝트'는 김도진 기업은행장이 2017년 창업벤처지원단을 행장 직속으로 만들면서 시작됐다. 중소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새 기업을 일으키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취지다.
김도진 행장은 "정책금융기관인 기업은행의 역할도 과거의 단순 자금공급자 또는 금융조력자를 뛰어넘어 성장동반자로 발전해야 한다"며 "은행으로서도 잠재적 우량기업을 일찍 발굴해 장기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동반자금융'을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범정부 차원의 혁신금융 비전 선포식을 기업은행에서 개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금융과 비금융을 융합한 혁신적 서비스를 금융의 새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셈이다.
기업은행은 현재 운영 중인 창공 2곳에서 60개 혁신기업을 발굴·육성 중이다. 여기에는 95억원의 금융지원이 투입됐다. 대출이 42억원, 투자가 53억원이다. 앞으로 창공을 더 만들어 2022년까지 500개 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기업은행은 벤처·중소기업에 투자도 하고 있다. 규모가 2016년 2천424억원, 2017년 2천368억원, 지난해 2천590억원이었다.
직접투자도 하고,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도 한다. 직접투자는 '극한직업'이나 '신과함께'처럼 영화 등 문화콘텐츠 투자가 대표적이다. NH투자증권[005940]과 함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스몰자이언트펀드'가 간접투자 사례다.
pseudoj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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