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두번째 시험대 오른 검찰…이번엔 '셀프 적폐청산'
보수정권 수사 끝나자 '김학의 재수사'로 개혁의지 평가 불가피
여론 불붙인 '성관계 동영상'…당시 수사팀은 "범죄 혐의와 무관"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문재인 정부 '개혁대상 1호'인 검찰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문 대통령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 등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과거사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라고 지시하고 하루 만인 19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같은 주문을 하면서다.
2년 가까이 검찰에 적폐청산 작업을 맡기며 본격적인 검찰개혁을 유예해온 정부가 이번엔 '셀프'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모양새다. 검찰은 그간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줄줄이 법정에 세우면서 창설 이래 가장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 국면에 대통령의 이례적 지시가 날아들자 긴장과 불만이 섞인 뒤숭숭한 분위기다.
법조계에서는 문 대통령의 지시가 사실상 김 전 차관에 대한 재수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고 장자연씨 사건의 경우 범죄 혐의가 될 만한 의혹들이 모두 공소시효를 넘긴 반면, 김 전 차관 사건은 추가 증거확보나 법리 적용에 따라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박 장관도 이날 "드러나는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신속히 수사로 전환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게 할 계획"이라며 재수사에 무게를 실었다. 절차적으로는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재수사를 권고하고 일선 검찰청이 수사를 맡게 될 전망이다.
검찰 과거사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일종의 자체 적폐청산기구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몇 차례 검찰총장의 사과나 제도개선을 권고했을 뿐 전·현직 검찰 인사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낸 적은 없다. 과거사위 판단에 따라 검찰이 재수사에 나설 경우 김 전 차관이 첫 사례가 된다.
오는 5월말 과거사위 활동이 끝나고 재수사가 이뤄질 경우 그 결과에 따라 검찰의 개혁 의지가 평가받을 전망이다. 정치권에서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는 상황에서 수사 결과가 변변치 못하면 검찰 입지는 그만큼 줄어들 게 뻔하다.
이 과정에서 당시 수사팀과 지휘라인에 있던 간부들에게까지 법적 책임을 묻거나 김 전 차관에 대한 '먼지털이식'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없지 않다. 최근 대권 후보로 떠오른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의 개입 여부까지 들여다본다면 검찰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검찰에서는 벌써부터 "적폐청산 수사도 거의 마무리된 마당에 이러나저러나 팽당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자조도 흘러나온다.
두 차례 수사에 이어 법원의 재정신청 판단까지 거친 사건을 또 문제삼는 게 결국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만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 검찰 관계자는 "2013년 1차 수사 당시 무혐의 처분은 비 검찰 출신 자문위원이 포함된 검찰시민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찬성한 것"이라며 "과거사위가 새로운 증거를 얼마나 확보했는지 모르겠지만, 법원의 재심 여부 판단처럼 사정이 명백히 달라진 게 없다면 재수사를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차관 사건은 '성관계 동영상'이라는 자극적 소재 탓에 사건의 실체가 왜곡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13∼2014년 검경 수사 당시에도 문제의 동영상에 김 전 차관이 등장하는지에만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경찰에서 넘겨받은 동영상이 인물들 관계에 대한 정황 설명이 될지는 몰라도 특수강간 등 김 전 차관의 범죄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는 게 당시 검찰 수사팀 설명이다. 김 전 차관의 등장 여부가 사건과 사실상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검찰 일각에서는 민갑룡 경찰청장의 최근 국회 발언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민 청장은 지난 14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동영상에서 김 전 차관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어서 감정 의뢰 없이 동일인이라고 결론 내고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곧바로 "(무혐의 처분의) 배후를 캐야 한다"는 등 국회의원들 발언이 이어졌고 나흘 뒤 문 대통령 특별지시가 떨어졌다.
박상기 "'김학의 동영상' 직접 보지 않았지만 보고는 받아" /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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