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부 관리들, 2002년 부시에 이라크 침공 부작용 경고
'퍼펙트 스톰' 메모 내용 공개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지난 2002년 당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강행하는 과정에서 국무부 고위관리들이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후 극심한 혼란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경고했으나 부시 대통령은 이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침공을 강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주 공개된 당시 기밀문서들에 따르면 윌리엄 번스 근동국장과 데이비드 피어스, 라이언 크로커 등 3명의 베테랑 외교관들은 2002년 7월 29일 자 콜린 파월 국무장관에 보내는 메모에서 "신중하지 않으면 바그다드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노력이 자칫 미국의 국익에 '퍼펙트 스톰'(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들은 퍼펙트 스톰 메모를 통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이라크 침공이 이라크 내부 혼란과 중동정세 급변 및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은 이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아무런 사후 계획도 없이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다.
이라크 침공의 후유증을 경고한 이른바 '퍼펙트 스톰' 메모의 존재는 앞서 여러차례 언급됐으나 그 내용은 기밀로 취급됐다. 당시 중동과 러시아 및 기타 지역에 대한 80여건의 기밀 정책 문서들이 최근 번스 전 국무 부(副)장관의 회고록 '블랙 채널'(Back Channel) 출간에 맞춰 공개됐다.
번스 전 부장관은 현재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이사장으로 있다.
미군은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곧이어 이라크 내부 유혈 종파 분쟁에 휩싸였으며 지난 2011년에야 철수했다.
번스 전 부장관은 인터뷰에서 '2002년 7월 메모는 이라크 침공 이후에 대한 전쟁 옹호자들의 터무니없는 장밋빛 전망에 일침을 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10쪽의 이 메모는 이라크 수니와 시아파, 쿠르드족 간의 폭력사태와 미군에 대한 공격, 이란과 인접세력의 개입 등 많은 부작용을 예견하는 한편 이라크가 향후 수년간에 걸쳐 겪게 될 구조적 변화와 안정 등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다.
이 메모는 또 '운이 좋으면 4년, 아니면 5년간의 (미군) 주둔 계획을 필요로하며 운이 없다면 10년이 될 수도 있다'고 예견하고 있다.
반면 이들이 예측한 후세인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과 이라크 북부 쿠르드 거주지에 대한 터키의 군사개입 등의 '재앙'들은 실제 발생하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그동안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후세인 없는 세상이 더 안전하다'는 논리를 앞세워 이라크 침공 결정을 옹호해왔다.
이들 국무부 관리는 후세인 정권의 레짐체인지를 직접 반대하지는 않은 채 (레짐 체인지에 따른) 발생할 수 있는 결과를 경고하면서 미국은 후세인 정권에 대한 예방 공격을 단행하기에 앞서 최대한의 국제지지를 확보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번스 전 부장관은 "우리의 우려에 대해 정직하려 했지만, 당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게 전문 관료로서 가장 큰 후회"라고 술회했다.
당시 파월 장관은 이들의 견해를 부시 대통령 및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 등과 공유했으나 2002년 8월경에는 이미 이라크 침공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이밖에 2001년 11월 19일 자 문서는 국방부가 9/11 테러 두 달 만에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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