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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사자 한병구 일병 유해 68년만에 가족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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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사자 한병구 일병 유해 68년만에 가족품으로
2016년 양구서 유해 발굴…동생의 DNA 시료채취 참여로 신원확인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한병구 일병의 유해가 68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12일 오후 2시 서울시 은평구에 있는, 한 일병 친동생 한병열(79) 씨 자택에서 6·25 전사자의 유해를 가족에서 돌려주는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허욱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은 이날 정경두 국방부 장관을 대신해 유족에게 한 일병의 참전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신원확인통지서와 국방장관 위로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전달할 예정이다.
한 일병의 유해는 유족들과 협의를 거쳐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한 일병은 1933년 8월 7일 4남 3녀 중 차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1950년 12월 29일 18세의 어린 나이에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했다. 이후 한 일병은 대구 1훈련소에서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국군 9사단 전차공격대대에 배치됐다.
1951년 1월 중순부터 2월 16일까지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춘양·장성·하진부리 진격 작전과 정선 전투 등에 참전해 임무수행 중 전사했다.
한 일병의 유해는 2016년 9월 7일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수리봉 940고지에서 발굴됐다. 양구 수리봉 지역은 6·25전쟁 당시 피의 능선 전투 등이 있었던 격전지로, 해당 지역에선 유해발굴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700여구의 유해가 수습됐다.
한 일병의 유해를 발굴할 당시 현장에선 낡은 전투화 밑창과 버클 등의 유품도 나왔다.

하지만 전사자 유해를 찾았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안타깝게도 발굴 당시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유품이나 일치하는 유가족 DNA 데이터가 없었기 때문에 '한병구'라는 이름을 찾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해 4월 동생인 한병열 씨가 부인과 함께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군부대에서 운영하는 6·25전쟁 전사자 유가족 DNA 시료 채취 부스를 보고 DNA 시료채취에 참여해 한 일병의 신원이 확인될 수 있었다.
한병열 씨는 "잃어버린 형님의 이름과 명예를 되찾게 돼 가슴이 뿌듯하다"며 형님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준 정부와 국군 장병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남상호 유해발굴감식단 유가족찾기팀장은 "유해는 찾았지만,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전사자가 1만여명 정도 된다"며 "이분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해와 비교할 수 있는 유가족들의 DNA 확보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hoj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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