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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길을 묻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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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길을 묻다]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나라
'개천용 지수' 상승…부모가 흙수저면 자식도 흙수저
SKY 재학생 70%가 금수저…'계층이동 사다리' 사라진 세습공화국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딱히 내세울 것 없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신의 노력으로 지위를 얻고 부를 쌓으면 "개천에서 용났다"는 속담을 우리는 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이런 속담을 쓸 수 있는 경우를 찾기는 거의 힘들어졌다. 부모가 흙수저면 자식도 흙수저가 되는 '세습 공화국'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분배정의연구센터의 주병기 교수는 10일 우리나라가 갈수록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 교수는 '한국사회의 불평등'이란 논문에서 그 어려움의 정도를 수치화해 '개천용지수'로 명명했다.
부모의 학력과 소득분포, 자녀의 소득 등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개천용지수는 2000년대 초반 15∼20%에서 점차 올라 2013년 35%로 높아졌다.
이 지수는 '기회가 평등할 때 성공할 사람 10명 중 기회 불평등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수'다.
즉 2000년대 초반에는 그런 사람이 10명 중 2명이었다면, 2013년에는 3명 이상으로 늘었다는 의미다.



개천용지수와 비슷한 개념으로 국가별 비교에 쓰일 수 있는 게 '지니 기회 불평등 지수(GO지수)'다. 소득 불평등을 보여주는 지니계수를 변용한 것이다.
GO지수는 지니계수처럼 수치가 높을수록 기회 불평등이 심한 사회라는 의미다. 한국은 2013년 기준 GO지수가 4.51로 나타났다.
이보다 약 10년 전 수치지만, 유럽 국가들과 미국을 대상으로 측정된 GO지수는 이탈리아(7.64)·미국(6.93)·벨기에(4.58)·프랑스(4.22)가 높은 그룹, 노르웨이(2.18)·스웨덴(1.09)·독일(0.88)이 낮은 그룹이다. 우리나라는 높은 축에 속한다.



물론 다른 사람의 성공을, 또는 자신의 실패를 모두 기회 불평등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어려운 환경을 노력으로 극복한 성공담도 적지 않다.
주 교수는 그럼에도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환경에 따라 발생하는 불평등에 대해서까지 개인에게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기회평등의 원칙"이 복지 선진국들이 추구하는 사회정책의 기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환경'의 대표적인 사례가 부모의 학력과 소득이다.
여기서 발생하는 차이가 기회 불평등으로 작용, 노력에 따른 성취를 가로막아선 안 된다는 게 기회평등의 원칙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그러나 개천용지수와 소득불평등 지표인 지니계수 또는 5분위 배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양상이다. 1996년 0.3033(시장소득 기준)이던 지니계수는 2006년 0.3583, 2016년 0.4018로 상승했다.
소득 불평등보다 부의 불평등은 더 심하다고 주 교수는 지적했다.
그가 인용한 김낙년 교수의 '한국의 부의 불평등'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상위 10%가 부의 60∼70%를 차지, 70%를 넘는 미국 다음으로 부의 집중도가 컸다.



이처럼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이 기회 불평등으로 작용, 자녀의 학력 차이로 이어졌음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최근 공개됐다.
한국장학재단이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학기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이른바 스카이(SKY) 대학 재학생 중 장학금을 신청한 학생의 46%가 9·10분위, 즉 소득 상위 20%의 자녀였다.
특히 상위 10%인 10분위(30%)가 상위 10∼20%인 9분위(16%)의 2배가량 됐다. SKY 중에서도 서울대가 9분위 16%, 10분위 32%로 고소득층 비율이 가장 높았다.
SKY를 제외하면 9·10분위 비율은 각각 13%와 12%였다. 고소득층 비율이 SKY의 절반 정도(25%)에 그친 셈이다.
심지어 SKY 대학 재학생의 70%가량은 장학금 신청이 필요 없을 정도의 '있는 집' 자녀들이라는 한국장학재단의 조사 결과도 공개된 적이 있다.
고려대 이우진 교수는 '포용적 성장과 사회정책 연구' 논문에서 "소득·자산 불평등의 증가는 개인의 삶 전체에 누적되며, 다음 세대의 기회 불평등에도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부모세대의 소득 및 자산의 불평등이 심할수록 자식세대의 소득 불평등 또한 증가하는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즉 불평등의 세습 또는 불평등 함정에 빠질 위험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좋은 대학'이 높은 확률로 '좋은 일자리'로 연결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부모세대의 소득과 재산이 자녀세대의 학력과 일자리로, 다시 소득과 재산으로 순환하며 대를 잇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렇다면 세습 공화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주 교수는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 강화, 고용형태(정규직-비정규직)·기업규모(대기업-중소기업) 등에 따른 임금격차 축소 등으로 소득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병행해 민간의 과도한 교육비(사교육비) 지출을 줄이고, 대학입학 전형에서 지역균형선발과 기회균형선발 등을 정착시켜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 사다리'가 치워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가구 및 지역 환경별로 자기학습시간 격차나 사교육 격차 때문에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방안이 필요하다"며 "취약계층 학생들의 방과 후 자기학습 환경을 개선하거나 사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zhe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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