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서 유영하는 아담과 이브…시각 향연 펼친 '천지창조'
하이든 종교곡을 시각화·현대화…9m 크레인·1천ℓ수조 등 눈길
(인천=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지난 1일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한가운데 놓인 1천ℓ 규모 수조 안에서 남녀가 유영했다. 이들은 태초의 남녀인 아담과 이브였다.
자궁 안의 태아들처럼 부드럽게 헤엄치던 이들을 수조 뒤편에 놓인 9m짜리 크레인이 서서히 끌어 올렸다. 이들은 공중 위로 날아오르며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신(神)과 모든 피조물을 찬미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객석 쪽 천장에는 거대한 풍선 32개가 가득 들어차며 창조의 풍성함이 배가됐다.
이는 이날 아트센터 인천 개관작으로 선보여진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장조'의 하이라이트 중 한 장면이다.
이 작품은 성경 창세기가 전하는 7일간의 천지창조 과정을 노래하는 장대한 종교극이다. 본래 성악가들이 보면대 앞에서 노래하는 형식으로, 오페라와 같은 무대와 연출은 없다.
그러나 이날 스페인 비주얼 아트그룹 '라 푸라 델스 바우스' 버전은 천지창조 과정을 음악뿐 아니라 시각예술로도 새롭게 펼쳐냈다. 창조의 가치를 담아내면서도 눈과 귀를 사로잡는 연출로, 2017년 3월부터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홀, 프랑스 필하모니 드 파리, 대만 가오슝 아트센터 등 세계 주요 극장의 개관작으로 선정됐다.
이날 한국 초연된 '라 푸라 델스 바우스' 연출은 혁신적이되, 중심을 음악과 가사에 뒀다.
무대 위 스크린에 빛이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모이고, 부서지길 반복하는 첫 장면은 심연 속에서 빛이 탄생하는 첫째 날을 구현하기 위한 장면이었다.
신이 해와 달, 별을 만든 넷째 날을 노래하는 장면에서는 영상 기술로 태양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들을 무대 위에 채워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느낌을 줬다.
물고기와 새, 곤충과 짐승들의 탄생 등 성경의 세부적 표현들도 생생하게 묘사됐다.
사람의 형상을 빚는 여섯째 날에는 유관순 열사의 초상화를 띄워 객석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공연일이었던 3·1절의 역사적 의미와 한국 관객들을 위한 '깜짝 선물'이었다.
다만 공연장 규모와 구조가 이 작품과 딱 맞아 떨어지진 않아 다소 어수선한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공연장 측은 고민 끝에 자막 스크린을 올리지 않고 가사집을 배부했는데, 어두운 콘서트홀 관람 환경상 가사집을 보면서 관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케스트라 피트(무대 아래 오케스트라를 위한 공간)가 없어 무대 위로 오케스트라가 올라온 점, 크레인 등을 작동시키는 소음 등이 그대로 객석에 노출된 점 등도 무대를 어수선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무대 위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훌륭한 가창력과 프로정신을 보여준 독창자들이 더욱 빛이 났다.
아담과 이브를 연기한 베이스바리톤 토마스 타츨과 소프라노 임선혜는 온몸이 젖은 채 와이어에 매달려서도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와 정확한 음정으로 천지 만물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표현했다.
지휘자 김성진이 이끈 한국의 고음악 연주단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과 그란데 오페라 합창단도 서사를 흔들림 없이 풀어갔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음악에 여러 시각적인 요소를 접목함으로써 오라토리오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게도 진입장벽을 낮춘 공연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러나 음악공연이라면 더더욱 주의했어야 할 음악 외적인 소음들이 많이 발생했고, 비주얼 아트 측면에서도 정교함이 조금 떨어졌다"며 "기술이 발생시킨 단점들을 오히려 인간(성악가)의 목소리와 프로정신이 덮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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