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의 과욕?…"너도나도 3대 항쟁지" 견강부회
학예사들 "지자체 '최초병·3대병' 걸려" 우려
(화성·수원=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경쟁하듯 기념사업을 쏟아내는 일선 지방자치단체의 역사 해석 과잉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에선 너도나도 "최초 만세운동지" 혹은 "3대 항쟁지"라고 홍보하고 있으나 명확한 근거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자칫 선조들의 희생이 후손들에게 잘못 알려질까 우려한다.
경기 화성시는 지난 26일 언론 취재지원자료를 배포하고 "서울 탑골공원, 천안 아우내장터와 함께 3.1운동 3대 발생지로 꼽히는 화성"이라고 홍보했다.
근거를 묻자 담당 부서 공무원은 처음엔 "교과서에 실려있다", "어떤 문헌에 그렇게 돼 있다고 한다"고 얼버무리다가 결국엔 "화성은 현재 북한의 2곳과 함께 3대 항쟁지로 기록된 곳"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해당 공무원이 언급한 북한 2곳과 남한 1곳으로 된 3대 항쟁지는 안성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1919년 경성지방법원이 작성한 민족대표 33인이 포함된 손병희 외 47명의 판결문에는 "피고들의 선동(3·1운동)에 응하여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및 원곡면 등에서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폭동을 야기함에 이르게 한 사실로서…."라는 내용이 나온다.
안성 양성·원곡면은 1919년 4·1 만세항쟁으로 마을에서 일본인을 이틀간 전부 몰아내고 관청을 불태우는 등 치열했던 항쟁지로 꼽힌다.
이런 자료를 제시하자, 화성시 담당 공무원은 그제야 "3대 발생지라는 표현은 기사에서 빼달라"고 말했다.
정확한 것은 1919년 일본 경찰이 작성한 보고서를 번역해 1970년대 집필한 독립운동사자료집에 "화성 장안·우정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이 북한 황해도 장단면과 함께 가장 극렬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또 화성 제암리는 3·1운동 3대 발생지가 아니라, 서울 탑골공원, 천안 아우내장터와 함께 3·1운동 관련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곳이다.
있는 사실만 알려도 충분히 3·1운동사에 길이 남을 화성이지만, 역사를 과장하면서까지 홍보하려했다는 점은 아쉽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수원시도 지난 8일 보도자료를 통해 "3·1 운동 당시 수원군(현재 수원·화성·오산)은 평안북도 의주, 황해도 수안과 더불어 3·1운동의 3대 항쟁지로 알려져 있다"고 홍보했다.
수원시 학예사는 이에 대해 "그건 잘못된 표현이라는 지적이 맞다. 안그래도 공보실에 잘못된 내용이 보도자료로 나가지 않도록 수정을 요청해 바로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3대 항쟁지(안성시에선 3대 '실력항쟁지'로 표기)는 남한에서 유일하게 안성 양성·원곡면이 포함된 게 맞다"며 "수원은 안성 만세항쟁 이후 천도교 수원대교구에서 만세운동을 모의한 지도부가 현재 화성시인 당시 수원군 장안·우정면으로 가서 만세운동을 격렬하게 했고, 이후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의 제암리 학살사건까지 발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확한 표현은 '3대 항쟁지에 버금가는, 그보다 더 격렬했던' 수원지역(장안·우정면) 만세항쟁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수원 이남에서 최초", "수도권 이남 처음", "전국에서 가장 광범위하게"라는 등의 명확하지 않거나 과장된 표현으로 홍보자료를 배포해 눈총을 사기도 했다.
한 지자체 소속 학예사는 "역사학자로서, 일부 지자체의 도 넘은 홍보 경쟁이 자칫 선조들이 피로 쓴 희생의 역사를 왜곡할까 우려스럽다"며 "학예사들은 시 담당 부서나 시 공보실 등에 정확한, 역사에 근거한 표현을 쓰도록 수차례 건의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학예사는 "만세운동은 어느 지역에서, 어떤 형태로 있었든 고귀한 게 맞다"면서도 "지자체의 치적 홍보식의 과장된 보도자료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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