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대한민국 잉태' 100년 전 '3·1운동' 정신 되새기자
(서울=연합뉴스) 3월 1일은 선조들이 우리 땅을 강점한 일제의 탄압에 분연히 항거하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 3·1운동이 일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기념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100년 전 3월 1일은 민주공화제인 대한민국이 사실상 잉태된 날이었다.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각계 인사 1만여명이 참석하는 정부 차원의 대규모 행사가 열리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3·1운동은 '상하이 임시정부'와 함께 대한민국의 뿌리라 할 수 있다. 3·1운동이 일제의 강점과 압제를 뚫고 자유와 평등을 핵심 가치로 하는 민주주의와 평화, 비폭력을 주창했다는 점에서다. 자발적으로 3·1운동에 참여한 민중에서 발현된 민주주의와 독립 정신은 그해 4월 11일 탄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그대로 이어졌다. 임시정부는 주권이 민중에 있다며 국체(國體)를 민주공화제로 채택하고 민족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이런 사실은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헌법에도 반영됐다.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일제 강점이라는 불의에 맞서면서도 그 방식은 비폭력적 저항이었다는 점도 3·1운동의 빛나는 정신이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200만여 명이 참여한 3·1운동에서 일제의 가혹한 진압으로 7천500여명이 살해되고 1만6천여명이 다쳤지만, 만세 운동 참여자의 폭력으로 숨진 일본 민간인은 단 한명도 없었다. 3·1운동의 이런 비폭력 정신은 중국의 5·4 항일운동과 인도의 국부 마하트마 간디가 이끈 '무저항주의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런 점에서 비폭력 정신도 우리가 이어가야 할 소중한 유산인 셈이다.
3·1운동에서 빛났던 민주주의·평화·비폭력의 정신은 우리 현대사의 고비마다 유전자처럼 등장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끌어내린 것을 비롯해 부마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의 정신적 뿌리는 3·1 운동에 두고 있다. 국정 농단이 드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끌어내 시민혁명 반열에까지 오른 촛불집회도 민주주의와 비폭력을 강조한 3·1운동 정신에 닿아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둘러보면 100년 전 선조들 앞에 설 면목이 없어진다. 100년 전 만세 운동 때는 3천리 강토의 민중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하나로 뭉쳐 '대한 독립'과 '민족 자주'를 외쳤지만, 그 가치를 공유해야 할 후손들은 광복 이후 아직 남북으로 분단돼 있다. 임시정부 법통 계승을 자부하는 대한민국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념, 지역 간 갈등과 대립이 끊이질 않는다. 강대국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했던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100년 전처럼 한민족이 하나가 돼 한반도 번영과 발전을 주도해야 한다.
3·1운동 100주년을 계기로 우리는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고 선조들이 빛낸 민주주의·평화·비폭력의 정신을 되새겼으면 한다. 이번 3·1절에도 과거처럼 그 정신보다 항일만 부각된다면 한일관계 악화란 나쁜 결과만 초래될 것이다. 또 이념적 진영의 시각으로만 접근해 대한민국 건국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것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이념과 정파, 계층을 떠나 100년 전 선조들이 물려준 정신적 유산을 잘 계승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둡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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