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특위 10개월여만에 활동종료…"용두사미" 지적
100년 로드맵 만든다더니…권고내용 부실하고 모호
(세종=연합뉴스) 이 율 기자 = 부동산 보유세 개편을 비롯해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한 우리 사회의 중장기 재정개혁 로드맵 마련을 목표로 했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26일 10개월여 만에 활동을 종료했다.
고가 1주택자에 대한 장기보유 특별공제 혜택 축소, 상속·증여 세제 합리화, 휘발유·경유 상대가격 점진적 조정과 같이 모호한 방향을 담은 '재정개혁 보고서'를 남기고서다.
시민단체들은 보고서에 대해 일부 개혁과제가 포함되기는 했지만, 중장기 로드맵으로 보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용두사미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적정화·합리화·상대가격 조정" 등 모호한 권고
26일 재정개혁특위가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공식활동을 종료하면서 정부에 낸 권고안인 '재정개혁 보고서'를 보면 '적정화'나 '합리화', '상대가격 조정' 등 정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은 용어 투성이다.
고가주택에 대한 투기 억제를 위해 고가 1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을 적정화하겠다는 것은 그나마 방향성이 명확한 편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방안으로 제시한 것은 미미한 편이다. 고가 1주택에 대한 장기보유 공제 한도(80%)는 유지하되 현행 10년인 공제기간을 연장하고, 비과세 요건에 거주기간을 추가하는 한편, 1가구 1주택 비과세 부속토지 범위를 조정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환경·에너지 세제 개편과 관련해서도 "세수 중립 원칙하에 휘발유·경유 상대가격을 점진적으로 조정하라"며 역시 모호한 권고를 내놨다.
이는 경유세 인상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의 대물림'에 대한 적정과세를 위해 상속세는 상속재산 전체가 아닌 상속인별로 상속받는 재산에 대한 과세가 이뤄질 수 있도록 개편하라는 권고도 제시했다. 증여세 과세체계도 상속세 과세체계 개편과 연계해 조정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이 역시 과표 구간 설정이나, 공제제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 부담이 지금보다 늘어날수도 축소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증권거래세에 대해서는 주식시장에 대한 영향과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해 함께 조정하라면서 중장기적으로 주식양도차익 과세대상은 지속해서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한 세제 전문가는 "방향성만 제시해 손에 잡히는 게 없다"고 평가했다.
◇ 100년을 내다보는 재정개혁 로드맵 만들겠다더니…"바로앞도 못내다봐"
재정개혁특위는 당초 국민의 목소리를 최대한 수렴해 1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재정개혁 로드맵을 수립한다는 목표 하에 지난해 4월 9일 출범했다. 재정개혁특위에는 예산·세제 분야 전문가 30명이 참여했다.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늘어나는 재정 소요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세부담률 증가 등 증세에 대한 공론화를 하고, 세입을 확충하는 과정에서 조세의 형평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였다.
세제는 워낙 예민하고 민감한 문제이니, 정부가 일방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위원회 조직을 통해 국민과 더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재정개혁특위는 지난해 7월 종합부동산세 인상을 골자로 한 부동산 보유세제 개편안을 내놨지만, 그 정도가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울러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을 늘리라고 권고했지만, 하루 만에 기획재정부가 반대하고 나서면서 체면을 구겼다.
재정개혁특위는 이어 하반기에는 자본이득과세 강화와 양도소득세 강화 방안 마련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지만, 활동을 종료하며 내놓은 보고서에 이런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중장기 재정개혁 로드맵을 제시하기는커녕, 정부가 2023년까지 포용적 사회보장체계 구축을 위해 필요한 재원 332조원 마련을 위한 로드맵도 제시하지 못했다.
재정개혁특위는 당초 재정개혁 방안과 관련한 공청회를 열려고 했으나, 전체회의 후 재정개혁보고서를 발표하고 정부에 권고안을 제출하는 형태로 활동 324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시민단체에서는 용두사미라는 지적이 나왔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김용원 팀장은 "고가 1주택자에 과도한 혜택 축소 등 일부 세제 전문가들이 문제로 지적한 내용이 포함된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면서 "100년을 내다보는 중장기계획을 세운다더니 바로 앞도 못 내다보는 보고서"라고 지적했다.
그는 "출범할 때와 달리 용두사미로 마감하는 꼴"이라며 "정부의 포용적 사회복지 보장체계 구축을 위해 330조원이 넘게 드는데, 재원은 사회적 논의를 통해서 하겠다더니 정작 보고서에는 그런 얘기는 쏙 빠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다만, 용두사미가 된 데에는 재정개혁특위도 문제지만, 재정개혁특위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한 정부도 문제"라면서 "공청회도 무산된 것으로 봐서 조세개혁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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